내가 인상 깊게 읽은 책 중에 하나인 ‘숨결이 바람될 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이 문장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는다는 표현이 굉장히 시적이면서도, 죽음을 뼈저리게 직시하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장이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온 구절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꼭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겠다고 다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희극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고 짧지만 그 안에 많은 교훈적인 대사가 있었고 전율을 느끼게 해줬다.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라는 미지의 존재를 기다리는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들은 고도가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다. 그저 막연하게 기다릴 뿐이다.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기다리는 동안 포조와 럭키라는 인물을 만나기도 하면서 고도를 기다린다. 줄거리는 정말 이게 끝이다.
처음에 이 작품의 이러한 단순한 전개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작품해설을 읽으면 해설에 내 생각이 종속된다는 느낌을 받아 평소에 작품해설을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추측해야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고도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기다림에 지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주목할 점은 그 무언가 중 하나가 ‘말’을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말하는 것의 기능을 타인과의 소통, 사고의 교환, 쓰기와 같은 표현의 한 수단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말을 한다는 것이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포조에게 가혹하게 다뤄지던 노예 럭키는 자칫하면 잊히기 쉬운 존재였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에 럭키가, 그 말에 두서가 없더라도 끊임없이 말을 쏟아낼 때, 럭키의 존재를 강렬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는 사람이 말을 하는 행위가 어쩌면 의사소통, 표현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정답을 받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온 나는 ‘고도’가 누구인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도가 어떤 존재인지 밝히지 않은 것은 작가의 의도적 장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도 정확히 무언인지 모르는 희망, 즉 고도가 어느 순간에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반복적이고, 단조롭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고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작가가 작품에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었던 것일 수 있다. 내 삶에서 고도는 누구인지 생각해봤다. 고민 끝에 난 ‘사랑’이라는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느꼈다. 언젠가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불확실한 희망을 품고 난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며 살아왔다.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행위의 이면에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기다림이 숨어있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에는 시적인 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 중 내가 정말 아름답다 느끼고 많이 공감했던 대사를 소개하겠다. 포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지요.’ 포조의 이 대사는 인간사의 진리를 담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승리에 취해 행복함에 젖어 눈물을 거둘 때면, 반드시 누군가는 패배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말한다.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되거들랑 언제라도 헤어질 수야 있지.’ 이 대사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도 타인과의 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때 쉽게 인연의 끈을 놓던 순간이 많다.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유지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었으면서, 이별은 정말 쉽게, 가볍게 한 적이 많았다. 사람과 쉽게 헤어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헤어짐이 나의 지극히 편협하고 계산적인 이유로부터 기인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고도를 기다리며의 많은 대사들은 곱씹어보면서 의미를 되새겨 볼 만했다. 깊은 삶의 진리를 담고 있는 희극을 찾고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