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배경의 여러
창작물에는 ‘기사’가 등장한다. 기사는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싸우는 전사로 중세시대 유럽의 하급
귀족이었다. 그들이 정식 기사가 되려면 7살 때부터 훈련을
받고, 21세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무예실력도
중요하지만 성실, 명예, 약자보호 등 기사정신이 투철해야
기사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기사는 15세기 왕성하였으나 봉건제가
몰락하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가난한 삶을 살아오다 57세의 나이에 ‘돈키호테’를 출간하고, 돈키호테는 일약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당시 유행하던 기사이야기를 너무 탐독하여 정신이상을 일으키어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붙이고
세상의 부조리, 부정부패를 바로잡으려 여러 모험을 한다. 세르반테스
작가 본인 또한 기사소설에 심취하였고 그의 영웅심을 자극받아 군대에 자원입대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설의
‘돈키호테’는 작가 세르반테스의 페르소나로 볼 수 있다. 당시 스페인은 인간성 유린도구인 종교재판과, 학문의 도살장 검열이
결탁한 불합리한 사회였기 때문에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유럽에는
기사들과 그들의 모험을 다룬 책들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세르반테스는 위 책들을 좋아했음에도, 같은 줄거리의 반복에 염증을 느꼈다. 기사의 영웅적인 면모에 집중한
나머지 등장인물의 성장을 그리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나태한 하급 귀족인
주인공이 하루 종일 기사도 소설을 읽는 것을 배경으로 돈키호테를 집필했다. 소설을 읽고 심취한 주인공은
몸소 눌린 자들을 돕는 영웅으로 살기로 마음먹고 낡고 빛나는 갑옷을 입고 여윈 말에 올라타 모험을 시작한다. 다른
기사도 책들과 이 작품의 차이점은 세르반테스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내밀한 삶을 깊게 관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성장하며 눈에 띄는 발전하는데, 이러한 문학적 발견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돈키호테를
근대 소설의 효시로 칭송하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정확히 하는 인물이다. 즉, 자신의
삶의 의미와 이유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에게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려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실천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돋보인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주인공이 자신만의 목표와 의지가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자신이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당장에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당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어 주겠다고 말해도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울 것 같다. 통장에 돈이 엄청 많게 해주세요, 서울 중심가의 건물주가 되게 해주세요
등의 단순한 소원을 빌 수는 있겠지만 주인공처럼 진심을 다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나에게는 과연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소설은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주인공은 “사람은
저마다 자기 행위의 자식이니라.”라는 말을 한다. 나에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과거의 나의 행동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대신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위대한 이유는 꿈을 행위로 옮기는 것인데, 그 행위의
결과 대부분에서 패배를 맛본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난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하다. 그에게는 실패나 좌절의식이 없는 것 같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 실패에 연연하지 않은 의연함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 작품 또한 그런 의연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표와
실천, 두 가지 삶의 중요한 덕목을 풀어내어 돈키호테는 이토록 오랜 기간 사랑받는 고전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