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이란 몸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생물의 내적인 작동방식이다. 책에 따르면 면역의 어원은 병역과 같은 의무를 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면역은 질병을 면하게 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백신을 통해 이뤄지는 면역계는 비과학적인 접근을 하는 일부 사람들과 백신에 관한 만연한 편견 때문에 정당한 지위를 갖지 못하고, 폄하된다. 저자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면서 직면하게 된 아이의 미래에 관한 문제를 둘러싼 면역에 대한 진실을 확인한다.
백신이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지는 백신과 면역계에 적용되는 비유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균과의 전쟁, 살균 등 인간의 몸에 속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전쟁의 비유는 줄곧 면역계에 적용되는 은유이다. 그러나 백신은 그처럼 몸 밖의 요소들을 적으로 삼아 제거하는 것이 아닌 몸을 위험에 적응시키고 훈련시키는 교육의 은유가 적합하고 면역은 방어가 아닌 조절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피아구분을 필요로 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면역계가 실제로는 자신의 몸의 일부인 암세포를 제거하는 점이나, 몸 속에 가득한 미생물은 제거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이라는 비유가 사용되는 데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다. 전쟁이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지는 몇 안 되는 인간 행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균비누는 명확한 이득이 없지만 보통비누에 비해 선호된다. 어쩌면 타자에 대한 혐오감이 일반적인 공감의 감정보다 만들어지기 쉬워서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 보건의 비유에서도 ‘질병과의 전쟁’을 ‘모두의 안전’보다 선호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백신에 관한 편견은 그 근거를 순수한 개인이라는 낙관적인 발상에 근거한다. 불가피하게 그 발전 양상은 이기적이게 된다. 편견은 백신을 자연스러운 면역계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오염으로 여기고 있으며, 백신이란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이므로 자기가 결정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태어나는 순간 세균과 여러 물질에 노출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화학물질과 세균에 비하면 백신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오염되지 않은 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이 몸을 순수하게 유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면역은 집단적으로 행해졌을 때 효과가 크다. 아이에게 백신을 안 맞히는 몇몇 부모의 경우 타인(책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희생을 앞세워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는 비양심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의 선택이 사회적인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현대인의, 우리의 처지가 더 이상 신화 속의 아킬레우스처럼 강에 몸을 담구는 것처럼 순수성을 강화하는 보호막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드라큘라처가 피를 빨듯이 비자기의 도움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처지라고 지적한다. 낙관적으로 자신의 몸만을 가꾸는 것은 무의미하다. 질병이란 기존의 관념과는 다르게 삶의 다른 영역일 뿐이며, 그것이 타자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차별적인 시선으로 면역에 관한 이슈들을 다루어선 안 된다. 공감과 유대감이 면역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사회적인 상호 협력의 체계가 개인의 건강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면역이라는 책의 주제는 과학과 인간, 사회를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과학은 한 명의 위인의 힘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일반인은 과학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정보는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고, 그 중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진실보다는 인간의 두려움을 반영할 확률이 높다. 한 연구가 발표되면 일희일비하고, 부산을 떤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용한 유사과학들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의 여파는 작지 않다. 과학은 무지를 바탕으로 발전하지만, 인간은 믿는 것을 더욱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는 배경이다. 정보의 분별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나 스스로를 대신하여 잘못된 정보를 치우고 진실을 알려주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