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권선징악의 테마를 어렴풋이 가진다. 그러나 그렇다면 샤일록이라는 캐릭터가 악인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샤일록의 입장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반유대주의 사회에서 핍박 받으며 살고 있는 와중에 계약을 지키지 않은 상대에게 정당한 요구를 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유대주의의 모순과 유대인도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알리고자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에게 포셔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정의 자금, 3000두카트를 빌려준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지만, 자신의 상선들이 난파당하면서 돈을 갚지 못하게 된다.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할 시 살 1파운드를 가져가겠다는 계약이 유효하기 때문에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고소하게 되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포셔는 남장을 한 뒤 공작 행세를 하여 안토니오를 구해주고 도리어 샤일록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그 방법은 계약서에 명시된 문장 그대로 이행할 것을, 즉 살만 정확히 1파운드 가져가고 피는 한방울도 흘리지 말 것을 재판한다. 이에 따라 샤일록의 재산은 전부 몰수되고,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포셔와 그 친구들은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확인하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겉으로 보면 희극이자 코미디이지만 이 작품은 16세기 영국에 만연한 반유대주의의 모순을 드러낸다.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유대인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한다. 그런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샤일록은 복수의 마음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안토니오의 살을 악독하게 떼어가려고 한다. 그것이 올바르고 선한 행동은 아닐지라도 감정적인 동물인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마저 실패하고 계약의 허점을 이용당해서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이 짠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기독교인도 유대인도 같은 인간이자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고, 오히려 유대인을 혐오하면서 자기들끼리의 사랑과 우정에 매몰된 기독교인들의 위선적인 면모를 엿볼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에 만연했던 혐오 정서를 알 수 있고 오늘날에 비추어 봤을 때 그게 옳지 않다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또한,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뀌는 인간의 감정과 그것을 합리화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유명한 작품 햄릿이나 오셀로에서도 알 수 있다. 가장 현명하고 자비롭게 묘사되고 있는 포셔라는 캐릭터도 있지만 어쩌면 그녀는 샤일록에게는 무자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옳은 인간은 없다. 누구나 상대적인 위치에서 상대의 욕망과 충돌하고 갈등하며 자신의 행복을 우위에 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사회적인 맥락에서 잘 맞아떨어졌을 때 우리는 쉽게 찬사를 보내고 그와 다른 길을 걸어갈 때 비난을 보내지는 않았는가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