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핸드폰은 갤럭시 노트 8로 바꿨다. 4년만에 바꾼 것이라 여러 기능이 많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 중 쓰다보니 가장 신기한 기능은 다름 아닌 삼성의 인공지능 비서 빅스비다. 이전에 나는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왜냐하면 기계에다가 대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나한테는 어색하게 느껴졌고,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으로는 핸드폰이 사람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고 이를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굳이 손으로 하면 되는 일을 왜 번거롭게 말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해서였다. 그리고, 이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길을 걷는다던지 교실 안에서든지 '빅스비, 문자 좀 보내줘'라고 말하기가 아직까지는 부끄럽지 않나? 그런데 요즘 내가 집에 있을때는 빅스비한테 여러가지 말을 하고 있으니, 얼리어답터는 커녕 laggard에 가까운 내가 이정도면 인공지능의 기능을 떠나서 사용환경의 조성 자체는 참 보편화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를 개발한 엘런 튜링이 만든 테스트로, 기계가 사람의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심사위원들에게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한 상태로 사람팀과 기계팀으로 나뉜 참가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대화를 나눠본 심사위원들이 기계를 사람이라고 추측하면 그 기계가 우승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튜링테스트의 인간팀으로 참가하게 되고, 참가해 우승하기 위해 과연 인간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찰하게 된다. 책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인간은 당연히 기계보다 변화에 유연하고, 맥락중심적이다. 급작스러운 주변 상황 변화에 기계가 대응하려면 정말 복잡한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고, 맥락에 따른 대화를 나누려면 엄청난 량의 메모리와 함께 맥락을 판단할 수 있는 복잡한 알고리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돌발적인 문제로 쉬는시간이 주어졌을때 저자는 기뻐한다. 바로 돌발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유연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에 몇 가지 트릭, 흔한 질문에는 미리 입력된 대답을 쓰고 복잡한 질문에는 적당한 대꾸를 임의로 집어넣는다던가, 까칠한 인격을 지닌 로봇을 만들어 맥락을 형성할 수 없게끔 만드는 방법을 통해 사람처럼 '느끼게'끔 만드는 로봇들은 제작되어 왔다. 한 학기동안 인공지능 조교를 썼지만 학생들 중 아무도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조교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임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내가 생각한 문제는 기계는 인간과 인간의 언어, 즉 자연어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인간은 기계에 가까워지고 있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20쌍의 남녀가 테이블을 바꿔가며 서로 1분씩 대화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스피드 데이팅은 전혀 맥락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스피드데이팅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비슷한 질문과 조건만을 확인하고 자신의 사랑을 찾는다는 점에서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친구들이나 선배와 대화하다 보면 요즘에는 누군가의 삶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결국 단편적인 소개팅이나 어플을 통해 누군가를 만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랑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랑만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천천히 누군가를 알아가는 '인간다운' 사랑의 기회가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