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 책은 예전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추천도서로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친숙한 느낌의 책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제목이 주는 쓸쓸함과 고독감이 이 책을 더욱 읽고 싶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책의 내용은 저자 신영복이 20여년의 긴 수감기간동안 느끼고 겪은 바를 가족들에게 적은 편지를 모아 엮은 책으로 20여 년 동안의 작가의 말 그대로 감옥 안에서의 사색이 담겨져있다. 흔히 우리들 모두다 혼자 방안에 있게 되면 사색에 잠기게 되는데 저자는 20여년의 세월을 조그만 감옥에서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색에 잠겼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20여 년간 하면서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사색에 잠겨 자신과 주변 가족들에게까지 좋은 생각을 심어주려는 저자의 긍정적인 태도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책의 내용이 모두 나에게 와 닿은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내가 와 닿은 내용의 책의 내용을 적어보고 자한다.
청구회의 추억. 저자가 어린아이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그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인데 이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순수함과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엿볼 수가 있다. 우리는 흔히 친구가 되려면 나이라는 사실에 얽매여서 우리의 관계를 한정시키고는 한다. 그러나 저자와 청구회원들과의 우정은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이었고, 그 우정이 서로에게 진실 되어 보였기 때문에 더욱 빛나게 보였다. 서로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나이가 어리다고해서 그들을 무시하거나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존중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런 빛나는 우정이 서로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정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형님의 결혼. 저자는 형님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저자와 형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하게 된다. 저자와 형과의 관계도 다른 대부분의 형제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저자는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이러한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 그리고 그것의 발전된 형태로서의 정체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가고 있는지를 고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대화에 매몰되고 있는지는 아닌지……. 이러한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관계에 대해서 고찰해보는 그런 대화가 더욱 깊은 인간관계로의 도야를 이루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염려보다 이해를.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특히나, 부모님께 편지를 전할 때 부모님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등과 같이 염려와 격려의 내용을 주로 편지에 적고는 한다. 보통 그렇다. 저자도 아버님에게 편지를 받고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저자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이해보다는 염려를 받고 있고, 자신은 염려보다는 이해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염려의 내용보다는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근황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 할 것이다. 아마 나도 지금까지 편지나 소식을 전할 때 나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보다는 듣기 좋은 말과 염려와 근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편지를 전할 때 염려보다는 이해의 편지를 적어야겠다.
아버님의 건필을 기원하며. 저자는 아버지의 건필을 기원하며 아버님이 글을 적으실 때 유의하여야 할 몇 가지에 대해서 당부를 드린다.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할 때는 왜곡되지 않게 반드시 어떠한 계기에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어떠한 양상으로 존재하다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갔는가 하는 역사적 관계 내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동시에 또 그것을 당시의 사회구조, 당시의 가치 규준에 조응시켜 당시의 사회구조가 갖는 필연적 한계를 늘 그것의 인식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에 대해서 평가를 한때 현재의 가치에 매몰되어서 당시의 상황을 고려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현재의 가치와 당시의 사회상을 모두 고려한 평가만이 제대로 된 평가일 것이고, 그러한 역사의 평가를 통해서 우리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높이고자. 저자는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하였기 때문이다. 나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된 적이 있다. 많은 지식이 좋은 생각을 불러오리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느끼는 바 없이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책읽기가 아닐 것이다. 책을 절반정도밖에 완전히 체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내 것으로 체득해야 온전히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마음이 아름다운 여자가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라는 말이. 저자는 동생에게 긍정적 미래로 열려 있는 여자인가 현재 속에 닫혀 있는 여자인가를 살펴보아야한다고 말한다.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여자인지에 대해서 살피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비단 여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가 남편감을 선택할 때에도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저자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동생에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 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라고 말을 에둘러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본 나로서는 웃기기도 하면서, 허를 찌르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미의 기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버림과 키움. 저자는 기나긴 수감생활동안 취사의 작업을 해왔다. 자신의 물건중의 몇 가지만을 취사하고 버리는 것을. 저자는 수감기간동안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다고 말한다. 버린다는 것은 조금은 서운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가지는 것에 익숙하지 버리는 것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계속 내 소유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나고 기숙사의 짐을 옮기다보면 입사할 때와 다르게 많아진 물건에 당황하고는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물건들과 같이 살아왔었구나 생각한다. 물건이 많을수록 내가 신경 쓰는 부분 또한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생활양식의 탄생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버린다는 것, 덜 소유한다는 것이 우리 삶은 더 키우는 손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이 글을 작성할 당시에 한자의 사용이 빈번해서 그런지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더러 있어 이해하기에 참 골머리를 앓았다. 또한 지금의 정서와 당시의 정서가 달라 아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몇몇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명작은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도 그 깨달음은 계속해서 후대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20여 년간의 감옥생활을 통해 얻은 사색을 통해 우리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우리도 가끔은 사색에 잠겨 우리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