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기억’의 무게
[서평] 건축 멜랑콜리아
다소 현학적이고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문장을 소화하기 위해선 가끔 문장의 꼬리를 붙잡는 수고를 감수해야한다. 건축, 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작가의 기억은 수많은 사상가들과 문장가들의 촘촘한 그물로 짜여있다.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건조한 글은, 사람의 온기보다는 냉정한 관찰자가 꼼꼼하게 한 자 한 자 눌러 담은 엄격한 조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건축, 멜랑콜리아가 매력적인 까닭은 다소 쌀쌀맞은 글 속에 담겨있는, 켜켜이 쌓인 기억의 무게가 그럼에도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기자인 저자의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는 도시의 풍경들은 다양한 모습들을 담는다. 건축읽기와 공간읽기로 나누어진 구성을 통해 그려지는 건축과 도시의 풍경은, 각각의 ‘기억’들이 담고 있었을 각자의 이야기를 잘게 절개한 해부도와 같은 형태로 우리 앞에 드러난다.
1부 건축읽기에서는 도시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 채 존재하고 있는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김중업과 김수근과 같은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물부터 이름 없는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까지 가림 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핵심은 결국 그 건축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들에 있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구성된 세계와 적나라한 욕망이 분출되는 건축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념비이자 기념물로써 시대를 상징하는 표의로써의 설계들이 드러난다. 그런 건축물들은 때로는 건축가들이 예술가로서의 장인정신을 드러내는 자아실현의 도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권력에 짓눌린 채 자신의 정체성을 억누른 다이달로스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2부 공간읽기에서 조망되는 공간들은, 노숙자, 노인들에 대한 배제의 역사부터 중산층, 상류층의 ‘욕망’을 드러내는 노을캠핑장과 서울 강남, 그리고 도시 그 자체의 이야기를 담는 청계천과 가리봉동의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이러한 건축물과 공간에 대한 해석이 기존의 건축 관련 도서들과 차별점을 갖는 지점은, 그 이야기들이 조망되는 시각이 단순히 건축 그 자체에 함몰되지 않는 부분에 있다. 건축과 공간은, 그 스스로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회와 역사라는 거대한 기반 위의 작은 점에 불과할 때도 있다. 군부 독재의 역사와 개발 광풍의 시대라는 근현대사의 두 개의 큰 물줄기를 바탕으로, 모든 이야기들은 마치 줄기에서 뻗어나가는 가지와 같은 모습으로 이리저리 뻗어나간다. 개별적으로 따로 존재하며 결을 달리하는 듯했던 이야기들은, 그렇기에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는 큰 명제 아래서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의 이야기로 다시 귀속된다.
건축과 공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써의 ‘도시’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도시라는 주어진 공간에서 별 다른 의미 없이 그저 ‘도시를 살아가지만’, 그러한 개개별의 삶을 관통하는 ‘도시의 기억’이 ‘무의식’으로서 갖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기억에 서서히 물들고 잠식돼 ‘도시인’이 된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처럼 “건축은 공간의 용어로 표현된 시대 의지”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건축물은, 공간은, 도시는 어떤 시대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완벽한 답도, 적합해보이는 기억도 찾을 수 없는 시점에서 끝난 독서는, 그렇게 새로운 ‘독서’의 출발점이 돼 다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은, 과연 어떤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