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학기 수업에서 일본문화의 이해 수업을 수강하였는데, 그 수업에서 배운 문화적 작품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어서 이번 방학을 맞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이 왜 인상깊었냐면 일본문화의 이해 교수님께서 일본 고전 문학의 정수로서 이 문학 작품을 제외하고는 일본 문화의 틀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모티브로 삼아 후세에 에마키(두루마리), 니시키에(판화) 등으로 탄생된 작품만 수천개에 달하고 이 작품에 쓰인 구절과 표현들이 일본 문화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일본 문화의 한 부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니 그 위용이 대단하다.
책을 빌려 작품해설 부분부터 읽어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엮은이는 겐지모노가타리를 일본 고전 문학의 최고봉이라 평했으며 여성 작가가 쓴 첨예한 심리 묘사, 고뇌를 조명한 고대 문학의 정수라고 평가하였다. 한 일본인 학자는 '부처의 자비를 입어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사랑과 진실이라는 보편적이고 거룩한 주제를 다루며 일본인의 미의식에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11세기 초에 지어진 이 작품의 작가는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여성인데, 이는 필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히카루 겐지'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한다. 당시 일본은 천황의 어머니의 조부나 국부가 권력의 정점에 서는 외척정치가 만행되었다. 귀족 가문 자녀를 천황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는데, 이 여성들은 교육도 많이 받고 교양을 갖춘 여성들이었다.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 역시 이러한 귀족 여성 중에 하나였는데, 문학적 조예는 물론 당시 시대의 섬세한 묘사, 등장 인물의 고뇌와 인생관 등을 잘 드러낸다. 54권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작품으로 구절마다 아름다운 표현, 명장면을 그린 삽화 등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그림책, 뮤지컬 등으로 작품을 재 탄생시키고 있다.
줄거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지만 크게 히카루 겐지의 일대기 형식으로 이루어 져있다. 히카루 겐지는 기리쓰보 천왕의 둘쨰 아들로, 뛰어난 용모를 지닌 사람인데, 천왕은 왕이 될 수 없는 겐지를 신하로 강등시킨다. 겐지는 일생동안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는데 본처는 아오이노우에이고, 유부녀 우쓰세미 유가오, 후지쓰보 중국, 무라사키노우에, 태후의 여동생 오보로쓰기요 등과 관계를 맺는다. 후지쓰보 중궁과 관게하여 아들 레제인이 태어나는데, 레제인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겐지에게 양위하려고 하나 겐지가 고사하고 레제인은 천왕이 된다. 후지쓰보 중궁은 겐지의 양어머니 였지만 겐지가 연모하였고, 그 아들 레제인은 천왕의 자리에 오른다. 본처 아오이노우에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기리가 있다. 히카루 겐지의 가계도를 보면 굉장히 복잡한데, 당시 왕족들은 근친혼을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줄거리 자체에서 교훈적인 내용은 잘 와닿지 않는다. 겐지의 일대기 속 등장하는 여성들은 거의 다 겐지와 관계를 하게 되는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들고 낳는다. 일부다처제인 당시 시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 문란한 마음가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왕궁에서 생활하면서 여성들의 질투와 수치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겐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절망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 왜 겐지모노가타리가 유일무이한 걸작이라고 평가받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엮은이가 내용을 압축시켜 놓은 책이라 전개가 빠르고 문장이 건조했다. 이제 대략적인 틀은 읽었으니 다음에는 전문을 다 읽어보면서 일본 고전 문학의 정수를 느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