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있는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는 꼭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습관이 퍽 즐거운 것임을 알게 해준 책이 바로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이다. 소설의 내용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이 책을 읽을 때 느꼈던 지하철 안의 온도와 냄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야기는 여교사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방학을 앞둔 종례시간, 여교사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학급 학생들 중에 있으며, 자신의 딸이 범인에게 어떤 식으로 살해되었는지에 대해 담담히 밝힌다. 그리고 범인이 마신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섞어놨다고 말한다. 어린 학생들에 의해 딸을 잃은 여교사의 복수, 범인인 두 학생을 둘러싼 학우들의 행동의 변화, 그리고 에이즈 환자의 피가 들어간 우유를 먹은 두 범인의 심리변화가 이 소설의 주된 서사이며,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 책에는 보통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볼 수 있는 대화를 나타내는 큰 따옴표(“”)나, 화자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작은 따옴표(‘’)가 없다. 1인칭 시점이 기본으로, 그저 화자가 하는 말이 줄글로 씌어 있다. 또는 특정한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고백'이 진행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이야기이므로, 대화의 장치는 필요하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화법은 한 인물이 하는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써놓은 것과 같아서, 각 장의 도입부를 처음 읽었을 때는 해당 인물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보통 구어체는 산문이 그러하듯 주장과 근거가 분명하게 정렬, 정리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친절한’ 화법으로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비로소, 모든 인물들의 고백이 끝나고, 이야기가 하나의 점에서 모였을 때, 독자가 받는 충격과 드라마틱함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명확하고, 독자로 하여금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를 확실하게 던져주는 것 또한 내가 느낀 소설 ‘고백’의 좋은 점이다. 개인이 개인에게 벌을 주는 행위는 정당한가. 청소년의 범죄 행위에 대해 성인과 다른 형법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한가. 인간에게 같은 인간의 인권을 평가할 권리가 있는가. 일반인이 잠재적 범죄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은 타당한가. 게다가 이 소설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무대는 ‘학교’이다. 비록 일어나는 사건은 다소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하지만, 사건의 무대는 무척이나 친숙한 장소인 것이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공유하는 독자로서,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는 작가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음과 동시에 파악 가능한 첫 번째 주제는 여교사의 ‘복수’이다. 소중하게 키워온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살해를 당했고, 살인자의 정체를 알면서도 처벌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발현되는 그녀의 절망과 복수심은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두꺼운 벽 너머, 미지의 감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말했듯이, 책을 읽는 것은 바다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행위와 비슷하다. 비록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 너머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하고 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소설을 읽는 것은 간접적 경험으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을 내 안에 쌓는 공부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을 통해서 조금은 낯선 감정들, 절망의 끝에서 타오르는 복수심이나 곧 다가올 죽음 등을 경험한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