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이전에 읽고 쓴 ‘루소 - 사회계약론’처럼, 시대를 앞서간 생각을 해낸 ‘선각자’ 두 번째 서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 -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선택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2000년 간 지배하던 서양 천문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보다 인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발견은 없다’는 괴테의 헌사 때문이기도 했다.
미리 고백하자면, 이 책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부분만 읽고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의 1페이지에서 46페이지까지만 코페르니쿠스에 관련된 내용이고, 뒷부분의 갈릴레오를 같이 읽어도 코페르니쿠스의 서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하던 당시, 천동설로 우주를 설명하던 이론의 정수는 ‘알마게스트’라는 책이었다. 천동설이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실로 받아들여졌지만,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한 학자는 코페르니쿠스를 포함해 얼마 많지 않았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주전원 가설’에 기반해 천체의 운동을 동심원으로 설명하는 천동설에 의문을 품고, 태양을 중심으로 궤도를 배치하고, 지구를 금성 - 화성 사이에 둔 뒤 천체의 궤도와 운동을 계산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지구의 자전 / 공전을 가정하면 당시 천문학에서 설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든 문제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는 ‘궤도의 크기와 주기 사이에 이렇게 조화로운 관계는 다른 어떤 배열에서도 볼 수 없다’고 서술했다고 한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천동설에서 말하는 ‘주전원 가설’없이도 외행성이 늘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는 역행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고, 수성과 금성이 태양과 가까이에서 관측되는 이유도 ‘내행성 최대이각 현상’으로 해명할 수 있었다. 즉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운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천동설에서 복잡한 가정을 바탕으로 설명한 것과 달리 수식으로 보일 수 있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천동설에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주전원’ 개념을 사용해 천체의 운동과 구조를 밝히고 있다. 천체가 원운동이 아니라 타원 운동을 하고 있으며, 등속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측으로 밝혀낸 지금에 이르러서 돌아보면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천체 구조가 올바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이론이 ‘하나의 일관성 있는 체계’를 이루지 못했던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일관성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핵심 특징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이 확고한 당대 천문계와 종교계의 탄압을 우려해 연구의 출판을 꺼렸다고 한다. 인류의 세계관을 뒤집는 내용이었고, 기독교가 주장하는 세계관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코페르니쿠스는 인생 말년에 이르러서야 출판을 결정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우려와 달리 당대에는 반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었기에, 능력 있는 천문학자가 아니면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못해서였다고.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변혁의 씨앗을 뿌렸다면,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생각한 후대의 학자들이 관측을 통해 증명해냈다. 그 후 태양중심설을 뒷받침하는 주장들이 점차 힘을 얻으며, 중세 과학과 종교관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처음 제기한 것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태양중심설은 결국 인간이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론이었으며, 기독교 중심의 우주관, 인간관, 세계관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하며 근대 과학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코페르니쿠스의 저서와 태양중심설이 미친 파급력을 찾아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1. 한 번 진실이 물꼬를 트고 등장하면, 언젠가는 진실이 빛을 발한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들이 받아들인 진실은 천동설이 아니라 지동설, 지구중심설이 아니라 태양중심설이었다. (다만 태양중심설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게 된 시기는 기술의 발달로 정밀한 관측이 가능해지면서였다. 케플러가 증명한 천체의 타원운동은 화성의 이동을 정밀하게, 오랜 시간 관측한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도 망원경의 발명이었다.)
2. 옳은 것과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이 항상 같지는 않다. 2000년 동안이나 천동설은 진실로 받아들여졌지만, 결과적으로 천동설은 진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믿고 있는 것들이 항상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조차도 ‘진실’이 바뀔 수 있는데, 사람들이 얽혀 사는 사회에서 믿는 ‘진실’은 더더욱 영원하지 않은 셈이다.
3. 진실을 추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집요하게 연구하고 탐구해야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라는, 당대 천문학의 정수를 이해하고 있던 몇 안 되는 학자였다. 그리고 천동설은, 당시의 관측 기술로는 오류를 찾기 어려울 만큼 정밀한 이론이었다. 그럼에도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의 석연치 않은 점을 찾아냈고, 결과적으로 천동설의 핵심 가정이 틀렸음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연구했다. 비단 학자가 아니라 해도,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공부하려는 사람이 참고할 만한 자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