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과학은 낯선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과학과는 접점이 없는 생활을 했으니 '과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선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실 과학이 없으면 당장 이 글도 쓸 수 없으니 거리가 멀다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아마 미지의 세계에서 오는 호기심과 같을 것이다. 나는 가끔 EBS의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찾아보기도 하고 코스모스 시리즈를 찾아보기도 한다. 깊게 파고들면 머리가 아프니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지만 과학에 흥미가 없지는 않다. 사실 과학책은 한 권을 전부 읽기가 힘이 든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한 페이지를 읽는데 스마트폰을 들고 얼마나 많은 검색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과학책에 관한 책이라니, 두껍고 어려운 책을 단 몇페이지만에 설명해준다는 것이 아닌가?이 책에서 10명의 과학자들은 2017년 동안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과학책 한 권과 비과학책 한 권을 소개한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부분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김범준 교수님이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설명한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이다.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는 평행우주를 설명한 책이다. 내가 알고 있는 우주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혼란스러운데 이 책에 의하면 평행우주는 1레벨, 2레벨, 3레벨, 그리고 4레벨까지 있다. 1~3레벨의 멀티 유니버스까지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수학 방정식을 따른다. 하지만 4레벨의 멀티 유니버스는 수학적 구조마저 다른 세상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커다란 책장 뒤로 비치는 수많은 사건과 이미지처럼 수백, 수천 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니버스라는 책도 읽어보지 않았거니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내가 평행우주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이 멀티 유니버스에 따르면 나와 동일한 수많은 나와, 나와 비슷한 수많은 내가 또다른 우주에 살아갈 수도 있다.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면 우리 우주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그 속에 살고있는 우리도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이 있다. 특별하지 않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을 읽고 문과 감성을 가진 과학자가 얼마나 멋있는지를 느끼게 됐다. "우리 모두는, 나나, 내 아이나, 독자나, 우리나라나, 모두 다 하나도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 소중하다. '우리' 우주도 말이다." (48p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니, 정말 완벽한 기승전결이 아닐 수 없다.
사는게 참 힘들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너무나 많고 나는 특별한 점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생물학적으로도 특별할 것이 없지만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데 나와 동일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니. 맥이 빠지는 것은 둘째치고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유니버스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안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좋은 서평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도 우리가 소중하다는 말 하나로 뭐, 한 번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순식간에 읽어야 할 책이 스무권이나 늘었다.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