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밟아온 학생이라면 김만중의 <구운몽>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수능 필수 고전으로, 여러 교과서에 실린 지문으로 많이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소설은 알려졌다시피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 어머니를 위해 국문으로 쓴 작품이다. 환몽구조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아홉 인물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지며 나 또한 국문학도로서 <구운몽>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바이다. 한때는 수능 공부를 위해 암기식으로 중요한 부분만을 읽어왔던 소설이지만, 대학에 들어와 그 전문을 찬찬히 읽어보니 확실히 다른 매력과 미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진과 양소유를 오가는 영혼의 교체는 물론, 여덟 여인들이 각기 다른 신분과 직업, 성격으로 등장하며 아홉 인물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구조도 흥미롭다. 이에 반해,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구운몽>에 내재된 남성적 이데올로기와 여성들의 역할을 생각해보아야한다.
<구운몽>에서 말하고 있는 욕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욕망의 주체인 주인공 양소유는 귀족적인 남성영웅으로 등장한다. 이념적 긴장과 윤리적 구속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고 탐미를 지향하는 인물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 양소유가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며 멋진 주인공으로 자리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출세를 통한 성공보다는 여덟 여인들을 거느리고 사는 남성으로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사대부들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으며, 남성적 욕망에 편중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남성적 욕구가 지배적 이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한편, <구운몽>은 여성간의 긍정적인 연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품 속 여덟 여인은 단순한 애욕의 대상이 아닌, 각자의 개성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돕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남성적 욕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여성 인물들은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로 그 신분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존재했으나, 그 신분 차이가 양소유의 애정을 획득하며 해소된다. 또, 처첩 간의 차이와 갈등도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이 이상적인 연대 상태로 해소된다. 자신의 애정으로 여덟 여인들을 화합시키고 여인들 또한 갈등 없이 순종적으로 살아간다. 양소유의, 그 시대 사대부들의 남성적 욕망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류사(楊柳詞)
버들이 푸르러 베를 짜는 듯하니
긴 가지는 누각에 그림처럼 어렸네.
바라건대 그대는 부지런히 심으로.
이 나무가 가장 풍류스러우니라.
버들이 어찌나 푸르고 푸르른지
긴 가지가 빛나는 기둥에 떨쳤구아.
바라건대 그대는 부질없이 꺾지 말라.
이 나무가 가장 정이 많으니라.
<구운몽>에는 많은 명구절들이 있지만, 내 기억에 가장 남은 부분은 바로 이 시이다. ‘양류사’는 양소유가 진채봉을 바라보며 읊은 시로, 그녀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이다.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 참 보기 좋았다. 이 외에도 교과서에서 자주 등장했던, 꿈에서 깨어나 양소유에서 성진으로 돌아가는 장면도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구운몽>은 교과서에서 벗어나 한번 쯤 전문으로 읽어보며 그 풍부한 이야기와 인물들을 곱씹어볼만한 좋은 고전이다. 교과서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작품을 읽어보자. 분명 가치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