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 김만중 / 민음사
'구운몽'은 고교시절 필독서로 수업시간에 읽은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양소유가 된 성진이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미인들을 쉴새 없이 만나는 과정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비슷한 전개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부귀영화와 미인에 빠져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크게 후회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구운몽에서는 주인공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귀영화를 쌓거나 비도덕적으로 여인을 만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극락세계행이 다소 의아하게 이해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구운몽을 다시 읽고나서 든 생각은, 그 시대라면 충분히 늬우침이 필요한 인물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해 신세한탄을 하다가 저승에 가게 된 성진을 통해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욕심을 자제할 것을 설파한다. 동시에 부귀영화와 많은 이성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또는 욕망을 우회적으로 비꼬는 것 같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가진 욕망의 종류나 그 크기난 변함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양소유가 된 성진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수 많은 여인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어 그것을 분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은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양소유가 성공하는 과정에 같이 공감하다가 이내 자신이 과거 육관대사의 밑에 있던 성진이라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나 또한 그 꿈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성진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 그가 양소유가 되어 원하는 것을 다 누리는 과정에서는, 인간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 것 같다. 요즘과 같이 출세와 성공을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독자들은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는 불교의 세계관이 유일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도를 닦아 극락세계로 가는 것이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양소유가 장원급제를 하고 여러 공을 세우며 인정을 받고, 많은 여인을 만나는 것이 꼭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방법과 마인드가 중요하지 행동 자체를 놓고 지금와서 그를 비난하고 세속에 쩌든 인간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세기에 쓰여진 글을 21세기의 청년이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꼭 양소유가 본인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늬우쳐야만 했을까? 굳이 극락세계로 가는 것만이 그의 잘못이라면 잘못인 행동을 참회하는 길인가. 물론 21세기의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고 여덟 명의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살던 양소유는 황제가 하사한 궁에서 몇 십년 동안 행복한 나날을 보낸 뒤에야 그 모든 것이 덧없음을 느끼고 만다. 부귀영화와 성공이 덧없음을 깨달으려먼 일단 그것을 누려봐야 안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이러한 점을 알고 성진을 양소유로 만들어 참회의 길로 유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구운몽이라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양소유의 극락세계행에 대해 의문을 갖는 21세기의 청년일지라도 그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
구운몽은 당시 양반들이 천하다고 생각했던 한글로 쓰여졌다. 양반들이 천하다고 생각하는 한글로 쓰인 소설은 당시 양반들만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꼬집는다. 한글로 쓰여져 평민으로까지 확대된 이 소설은 평민들에게도 양반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평민들의 욕망을 경계했다. 양소유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긴 과정을 매우 재미있고 빠르게 전개되는 점도 양반과 평민들이 소설을 재미있게 즐기는데 한 몫을 했다.
학창시절 문학작품을 읽으면, 아니 공부하면 그 글의 주제와 소재 등을 같이 접한다.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이라는 구운몽의 주제를 단편적으로 이해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의욕을 잃게만 만들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세속적 욕망에만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삶을 살 것을 얘기한다. 21세기에는 다양한 욕망과 수 많은 종류의 부귀영화가 도처에 있다. 단순히 '욕망을 버려라' 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맹목적인 욕심에 대한 경고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