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은 아홉
가지 구름의 꿈을 한자로 쓴 것이다. 부끄럽지만 구운몽을 들으면 무언가 구운 건가? 하고 생각했었다. 내가 중학생 때 유명한 몽은 또 MC몽이어서 뭔가 그 가수의 노래는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학교의 추천서 목록에 있는 몇 안되는 한국의 고전 문학작품이어서 고른 이 책은 예상 외로 정말 재미있었다. 승려가
환생을 하고, 여자를 꼬시고, 오랑캐를 무찌르는 사건들은
뭔가 요즘 히어로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여자를 유독 많이 꼬시는 히어로물이지만 재미난 영화 한 편을
보듯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재미의 8할은 미녀들이다.
주인공인 양 소유는 8명의 미인들과 인연을 맺는데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며 주인공과
만나는 장소도, 만나게 되는 이유도, 상황도 전부 다르다. 가장 나에게 신선했던 만남은 자객 심 요연과의 만남이었다. 적국의
장군인 양 상서를 죽이러 온 심요연이 갑자기 칼을 던지고 그에게 사모한다는 이야기를 길게 길게 하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정정한다. 황당했다.) 사실
이 소설에서 8명 중 정 소저와 낙랑공주를 제외하면 6명의
여성들은 자신이 먼저 양 소유에게 대쉬 아닌 대쉬를 하는데 너그러운(?) 양 상서는 넓은 마음으로 그
모두 받아준다. 그렇다면 양 소유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절세 미녀 8명를
얻게 된 것일까?
글을 읽으면서 부단히 양 소유를 분석하고 나도 이렇게 될 수는 없는지 고민을 했다.
먼저, 양 소유는 잘 생겼다. 희망의
끈이 풀린 채 나는 다른 부분들에 주목하여 나의 구운몽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두 번째, 양 소유는 글을 잘 쓴다.
그가 과거에서 장원 급제하기 전 꾀죄죄한 상태로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만난 두 명의 미인 모두 그의 글에 반하였다. 버드나무를 보고 그가 읊은 시가 근처 누각에서 낮잠을 자던 미인을 깨워 반하게 했고, 파티 중인 허영심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양생이 지은 시를 도도한 섬월이 노래로 부른 후 그를 섬기기로
했다. 오늘날에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인기가 많은가? 당시에는
시를 잘 쓰는 사람의 학식이 높았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는 것은 학식이 높고 총명하다는 뜻일
것이다. 희망의 끈이 점점 느슨해짐을 느낀다.
세 번째, 양 소유는 거문고를 잘 탄다. 우연한 기회에 음악의 신 도사를 만난 양생은 그에게 거문고의 기술과 멋을 배운다. 그리고 카사노바 양생은 곧장 자신의 능력을 여자 꼬시는 데 사용한다.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졌지만 얼굴이 거의 공개되지 않은 정씨 집안의 딸을 양생은 무조건 한 번 봐야겠다고 중매해주는 어머니의 외사촌 누이에게 떼를 쓴다. 정 소저가 음악에 조예가 깊음을 듣고 양 소유는 여장을 한 채 그녀를 만나러 정씨 집에 들어간다. 여덟 곡 아름답게 연주를 하여 정 소저를 놀라게 한 양생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잡고 사마상여가 탁문군을
유혹하던 노래인 봉구황을 연주한다. 과연 바람둥이는 다르다. 나도
기타를 칠 줄 안다. 하지만 아직 여덟 곡까지 외우지 못하며 여자를 유혹하는 마지막 노래는 더욱 연마하지 못했다. 배울 점이다.
네 번째, 양 소유는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다. 비록 양생이 글을 잘 쓰고 거문고를 잘 타 여성들을 유혹했다고 하지만 그는 실제로 국가가 원하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과거 시험을 앞두고 세 여자와 인연을 맺은 뒤(공부하는 부분은 일체
나오질 않는다) 그는 바로 장원 급제를 한다. 양 장원이
된 이후 그는 반란군의 수장에게 글을 써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게 하며 천자의 명을 받아 오랑캐들을 전쟁에서 누른다. 행차하는 그를 보고 백성들은 감복하며 그의 군사들도 그를 존경한다. 양
소유가 사회적 인정을 바라며 살지는 않았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리더십, 그리고 총명함은 당시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였다. 현대사회에서도 리더십과 명석한 두뇌는 중요하다. 그러나 양 소유에게 배워야 할 점은 사실 다음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양 소유는 바람둥이지만 겸손하다. 물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천자, 왕후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며 대한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자신을 뽐내며 마구
들이대지 않는다. 상대방을 늘 칭찬하고 자신을 낮추는데 그의 이런 모습에 상대방도 늘 자신을 낮추고
양 소유를 높이 평가한다. 리더십과 총명함, 재주를 갖추었지만
타인을 늘 배려하는 양 소유의 자세는 비단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꼭 갖춰야 할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거의 완벽한 인간상에 가까운 양생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가장 중요한 양 소유의 자질이 하나 더 있다. 그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그는 소설
《구운몽》의 주인공이고 승려 성진의 꿈이며 작가 김만중이 쓴 조선시대의 완벽한 엄친아 히어로다. 애정에 대한 욕망이
최대한 멋지게 발현된 그는 단점이 거의 없다. 그러나 김만중도, 승려
성진도, 나도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소설 속 주인공이다. 내가 양 소유처럼 8명의 미녀와 함께
하하호호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괜찮다. 나는
나의 소설에서 열심히 살면서 공부도 하고 기타도 치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소중한 인연도 만날 것이다. 동시에 《구운몽》처럼 재미있는 연애소설도 읽으면서
겸손함을 배우고 배운 점을 따라서 생활한다면 나의 인생도 하나의 재미있는 한 권의 소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 二雲夢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