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場春夢(일장춘몽) : 한바탕의 봄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한낱 꿈, 부질없는 일, 쓸모없는 생각 등을 가리킨다.
人生無常(인생무상) : 사람의 삶이란 게 참으로 덧없음.
이 둘은 구운몽을 떠올리면 생각하게 되는 사자성어이다.
절에서 부처님을 기리는 스님과, 하늘을 섬기는 선녀들의 인간세상을 함축하는 하룻밤의 헛된 꿈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여러 번 읽었던 구운몽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김만중의 구운몽은 교과서로 보았던 시절의 나의 감상과 그래봤자 일이년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나의 감상이 다르게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나의 가치관에 변화가 되는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사양한 시야에서 작품을 관찰하기를 독려하는 상황이 교과서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구운몽에는 주인공인 성진과 양소유의 각각의 욕망이 처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성진은 현세의 부귀영화를, 양소유는 속제의 것을 헛되게 생각하여 불생불멸의 도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교과서를 읽었을 때의 나의 감상은 여느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른 바 없이 인생은 덧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맡은 바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이 내 감상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형화된 교과서에 맞춰진 나의 틀에 박힌 감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헛된 희망을 가진다고 한들 달라진 것이 있겠으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져 부귀영화를 누린들 내 인생의 덧없음이 해결될 일이 있겠으랴, 한 것이 나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룻밤의 꿈일지라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 그 후의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덧없을지 따위는 바랄 것도 없을 정도로, 인생이 아무리 무상하다 한들 어떻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지금의 삶이 힘들기 때문에 그런 헛된 희망을 가지고싶다는 것이 아니다. 하룻밤의 꿈일지라도, 그것이 없어져버리는 덧없는 ㅁㅁ것일지라도 말이다. 하룻밤의 나의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하게 해주는 꿈을 꿀 수 있다면 그 후의 남은 삶을 그 꿈을 현실로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로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구운몽이 하룻밤의 덧없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 구운몽의 주인공의 위치인 스님과 선녀가 아니기 때문일까 생각해본다. 나는 속세에 유혹을 받는 것 이상으로 속세에 찌들어있기 때문아닐까?
주인공 성진은 세속의 양소유로 환생해서 두 명의 부인과 여섯 명의 첩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것이 모두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불생불멸의 도를 얻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 꿈에서 깨게 된다. 꿈에서 깨는 순간 양소유는 본래 자신인 성진으로 돌아가게 된다. 불생불멸의 도를 얻으려 했던 욕심또한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나는 지울 수가 없다. 성진이든, 양소유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얻고싶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나만의 사고방식으로 이 책을 감상할 것이다. 무엇이든 경험해보고 나서야 후회하고 깨닫는 것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생을 덧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현재를 즐기거나 충실히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내 욕심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