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 까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얼핏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를 집약한 고전 정도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격동의 시기를 살며 공직을 박탈당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를 장악한 메디치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저술해 바친 책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직접 보고 겪지 않으면 그 이면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군주가 행할 권모술수를 위한 책이라는 오해와는 다르게 ‘군주론’은 참된 군주가 되는 참고서였다. 세습 군주국부터 자신의 군대와 역량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까지 다양한 형태의 국가를 정의하고, 군주가 가져야 할 군대의 종류와 용병, 군대를 위해 해야할 일 등 국가와 군주의 임무를 서술했다. 이후 군주가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 신의를 지키는 방법, 존경 받기 위한 방법 등 군주가 가져야하는 태도들이 이어지는데 지금 시대의 리더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이 보인다.
시대가 흐르며 그 가치를 재평가 받는 고전들에 ‘군주론’도 포함될 것이다. ‘군주론’은 정치에 관한 가장 유명한 책이며 플라톤의 ‘국가’에 버금가는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저술한 것을 보고 그를 폭력적이고 흉악한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사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렇게 불순하거나 난폭하지 않다는 것은 ‘군주론’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펼치는 사상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수단의 선함과 악함에 상관없이 그 수단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효율성만을 고려하는 것’과 ‘이를 위해 목적이 어떠한 수단이라도 정당화할 수 있다.’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권력 획득을 위해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들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도덕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 국가에 미치는 악영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존립을 위해 도덕과 윤리에 반하는 행위가 도저히 불가피할 때 군주의 비도덕적 행동을 허용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평소에는 절대 악행을 저지르거나 비도덕적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비도덕적 행동이 용인되는 상황이 아닐 때는 윤리적인 행동과 종교적 삶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군주는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통치자여도 ‘영광’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한다. 이는 군주론에 나오는 두 명의 군주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8장 <범죄로 군주가 된 사람들에 관하여>에서 다루는 시라쿠사의 군주 아가토클레스는 대단한 정신와 육체를 가졌고 어떤 장군들과 비교해서도 뒤질 것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 ‘통치권’을 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뛰어난 지도자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범죄를 통해 군주가 된 유형에 속했다. 반면에 체자레 보르지아는 로마냐 지방의 질서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마키아벨리가 보르지아를 군주의 전형으로 삼고 ‘군주론’의 모델로 삼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를 7장 <타인의 군대와 행운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에 관하여>에서 다루고 있는데 교황인 아버지의 후원 덕에 지방을 접수하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몰락한 보르지아의 한계를 다룬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타인이 아닌 자신의 군대와 역량으로 군주국을 유지해야 권력이 안정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나 지금이나 외부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세력의 힘이 아닌 자국의 힘과 군주(통치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이 부분만 읽어도 마키아벨리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횡포를 용인하는 사상가라는 주장은 큰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또한 군주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용인되는 시점이나 폭력을 행하는 방법 같은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맞는 국가의 건설과 그 유지를 논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제 정치학 뿐만 아니라 경영학, 리더십, 처세술 분야에서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전히 ‘군주론’의 일부분만 발췌해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인용하거나 포장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이카벨리에 대한 연구와 학습이 진전되면서 현재는 그에 대한 평가와 ‘군주론’에 대한 해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군주론’은 군주와 귀족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며, 정치는 군주 뿐만 아니라 귀족과 상인, 평범한 국민들 등 많은 집단이 참여해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더하여 국민이 군주의 정치에 참여하면서 조언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지금 정치인과 국민들의 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군주국을 지향한 마키아벨리지만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들에 적용되는, 또 반드시 필요한 사항들을 열거한 ‘군주론’은 앞으로도 많은 통치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읽혀야 할 고전이다. 리더로서의 덕목과 국민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 통치자와 그 통치자의 행태를 분석하고 조언할 수 있는 국민들이 한 국가에 있다면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