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하면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이든 사용하는 무자비한 정치철학자가 떠오른다. 사람이란 다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평가당하는 사람의 속성도, 평가하는 사람의 뇌도 간단히 도식화된다. 마키아벨리는 사실 차갑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에 무자비한 내용만을 담은 것도 아니고, 또 그것이 선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읽는 사람은 ‘아,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 사람’ 정도로만 파악하고 도식화해서 인상적인 주장들만 기억한다. 또 그런 도그마가 퍼져서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란 단어들은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키아벨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고 했고, 그에 대한 오해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서양 중세이전의 정치는 종교, 도덕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다양한 정치사상가가 등장하여 각자가 자신의 사상을 펴고, 군주는 자신과 맞는 사상가를 선택했다. 그래서 덕으로 나라를 이끌려는 공자도 있었고, 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한비자도 있던 것이다. 비록 각 사상들이 과학적 일반법칙을 가진 것이 아니고, 유가사상이 주류를 이루긴 했으나 이때만큼은 서양의 정치보다 앞서 있었다. 반면 유럽에선 교황이 곧 정치고, 정치가 교황이었다. 그래서 각 영주들은 교황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반기를 들기 어려웠다. 군주는 약속을 잘 지키고, 절제할 줄 알며,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여야 했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각 정치체계를 선악의 문제로 판단했으며, 정치를 잘하나 못하냐는 중세까지 선악, 도덕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도덕과 떼어내서 생각했다. 별개로 봤던 것이다. 그는 군주란 때로 악인이 될 필요가 있다고 했으며, 악평을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또 지키면 손해를 보는 약속에 대해서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했으며, 민중을 조련시키는 방법을 서술하기까지 했다.
마키아벨리는 당시로써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한 것이다. 동시대 지식인들은 그를 비난했으며, 교황청에서는 군주론을 금서목록에 등재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생각을 펼치지 못한 채 비극적으로 말년을 보낸다. 재평가는 근대로 넘어와서 이루어진다. 장 자크 루소 등 정치철학자들이 마키아벨리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정치학 부문 최고의 고전으로까지 격상된다.
군주론에 대해 더 알아보기 전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군주론을 쓰게 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중세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각축을 벌이는 장이었다. 피렌체는 막강한 도시국가 중 하나였는데,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공직생활을 하던 공무원이었다. 그는 공화국에서 선거로 뽑힌 사람이었다. 피렌체 도시는 메디치라는 영향력 있는 가문이 세습적으로 통치하던 곳이었다. 동시대 스페인과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힘을 갖춘 뒤, 병력을 갖추어 아직 통일되지 않은 이탈리아를 압박했는데, 이 때 벌인 전쟁이 이탈리아 전쟁이다. 이탈리아 땅이 풍요롭고, 문화적 수준 또한 높았기에 스페인, 프랑스는 자주 피렌체를 탐냈다. 그런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은 쫓겨나고, 급진적 공화정이 세워지는데 마키아벨리는 이 공화정에서 무려 14년을 고위공직자로써 재직한다. 하지만 곧 메디치 가문은 복권하게 되고, 마키아벨리는 반-메디치 인사로 제대로 찍히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에게 몇 차례 고문을 당하고, 현실정치에서 떨어진 채 은둔하며 살아간다. 이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책이 군주론이다. 내가 이토록 통찰력 있고, 잘 났으니 다시 공직자로써 일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는 구직 자기소개서였다. 실제로 군주론 첫 장은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는 헌정사로 시작하는데, 마키아벨리는 이것이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정성을 표한다. 하지만 정작 로렌초 데 메디치는 군주론을 평생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군주론보다 다른 사람이 바친 말을 더 좋아해 그것을 타고 다니는 데 정신이 팔렸었다고 한다.
군주론은 군주가 어떻게 처신해야 권력을 잃지 않고, 강력한 군주국을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한 책이다. 책의 처음부분에서 그는 군주국의 형태들을 나열한다. 공화국은 논외다. 혹자는 여기서 공화국을 제외한 이유가 마키아벨리 자신이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의 상황과 당시 상황은 다르기에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여튼 책에선 일관되게 군주국만을 설명하는데 주로 로마의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책을 읽는 것을 즐겼으며 일이 끝나고 저녁시간은 역사공부를 하거나 책을 집필하는 데 전념하는 삶을 살았다. 당시에는 원하는 자료도 많지 않고, 검색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원하는 사례를 자유자재로 가져오는 것을 보면 정말 해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군주론을 하나로 관통하는 사상은 ‘악’이라기보다는 ‘합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보다 나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교활하고, 속이고, 선동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보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많은 것이다. 어차피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의도가 아닌 결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결과를 낼 수 있는지만 마키아벨리는 초점을 맞춘다. 그는 선한 기질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것만 본 것이다. 이 생각을 명백히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요컨대 군주는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좋은 기질(인자함, 신의, 신앙심 등)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하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아니, 더 대담하게 말해서, 그런 휼륭한 기질을 갖추고 항상 존중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우며,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유익하다.” 군주론은 딱 이 한구절로 설명가능하다. 선함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남들로부터 존경심을 자아낼 때다. 그것 말고는 일에 효율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선할 필요는 없고, 선하게 보일 필요는 있다.
루소는 군주론이 군주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대중들을 가르치는 책이라 평했다. 군주의 속성을 밝혀냄으로써 깨우친 시민들이 공화정을 세우도록 유도한 책이라고 본 것이다. 나는 마키아벨리가 그 정도로까지 의도했다고 보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의도와 결과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는 굉장히 인문학적으로 통찰력이 깊은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서 현실을 못 보는 인문주의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기독교적 윤리관은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이 군주론을 자기계발서로 읽는 이유는 이 책이 나쁜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