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대부터 21세기 현대까지에 이르는 서양의 모든 음악사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물론 21세기로 갈수록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탄생함에 따라 이에 대한 서술 역시 빠짐없이 되어있다. 그러나 오랜기간 서양 음악의 역사는 따라서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의 고전적 음악들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클래식', 해석하면 '고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장르의 음악은 뭔가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 같은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클래식의 태동이 유럽에서 이루어진 만큼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국가의 국민들은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오페라 공연에 비교적 익숙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클래식은 다소 '고리타분'하며, 뭔가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장르의 음악이다. 이는 특히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알려지고 도입된 지 상대적으로 덜 오래된 동양권 국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몇 년간 힙합과 랩이 유행하고 그보다 이른 2000년대부터는 '뉴에이지'라는 장르의 음악이 유행했으며, 대중음악인 K-POP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뜨겁게 열광시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시대에 따라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정작 클래식이 전면에 등장한 적은 없다. 그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콩쿨이라고 하는 차이코프스키 콩쿨과 같은 대회에 한국인이 입상하면 뉴스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정도였고,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만이 유명세를 탔을 뿐 그가 '어떤 곡'을 쳐서 대회에 입상을 했고, 그래서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회적 변화는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는 어렸을 때 꽤 오랜기간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나 정작 그 때에는 음악 그 자체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연주하는 악기만 자주 바꾸곤 했다. 유치원 때 피아노를 시작한 후 초등학교 때는 플룻을 시작했고, 중학교 때는 뭔가 새로운 악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첼로를 배웠다. 그러나 시작한 동기가 피상적이었던 만큼 악기 연주에 대한 내 관심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함과 동시에 모든 악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지난 학기, 우연히 '음악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 다양한 악기를 다뤘고, 가요보다는 클래식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그 기억을 바탕으로 별 고민없이 수강신청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들었던 모든 필수 교양수업 중 가장 흥미있게 들었던 수업이었다. 수업은 단순히 교수님의 이론 강의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클래식 공연을 한 번쯤 감상하는 기회를 갖고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우리의 귀가 음악에 익숙해지게끔 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부여함으로서 '진짜' 클래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교양'의 정의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라 한다. 이러한 정의적 이해에서 보면 내 삶은 이것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고, 실제로 이 수업을 계기로 변화했다.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처음 가 본 실내악 공연에 반해 내가 다루는 악기인 첼로 공연을 여러 번 찾아다녔고, 오케스트라, 콰르텟 등 여러 형태의 공연을 감상했다. 그리고 무려 6년 동안 놓고 있던 첼로를 다시 조율하고, 교재를 새로 사서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곡가와 연주가가 생겼고, 평소 좋아하던 뮤지컬 공연을 찾아보는 만큼이나 클래식 공연을 검색하는 데 드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내 삶의 한 자락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이 수업의 바탕에 이 책, '서양 음악사'가 있었다. 교수님께서 수업할 때 만드신 교안을 이 책을 참고로 했을 정도로 그 기본적 내용이 탄탄하고 풍부한 책이다. 비록 수업을 들었던 1학기가 다 지나고 2학기마저 다 끝난 지금에서야 1,2권 다 합쳐 1천쪽이 넘어가는 이 책을 다 읽는데 겨우 성공했고, 기보법이나 음고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전문 음악학도가 아닌 나로서는 이해하기 나무나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책을 다시 되짚어 보며 교수님이 수업에 특정 음악가와 음악, 그리고 음악사를 선택하신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며,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수업 내용과, 이로 인해 가지게 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나를 다시 취미 음악인의 길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클래식.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고리타분한', 그리고 '어려워 보이는' 클래식은 우리 곁에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엘 시스테마 출신의 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아래 들었던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내 또래인 90년대 생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추억의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배경 음악으로 등장했던 굉장히 인상적인 음악이었으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주인공 마코토가 타임 워프를 처음 경험하게 되는 장소인 과학실에 흐르는 음악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2009년 세계 선수권에서 강렬한 눈빛과 안무로 빙판을 가르던 김연아의 연기를 우리는 누구도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연기의 배경음악은 다름아닌 그 '고리타분한', 그리고 '지루한' 클래식인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였고,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세헤라자데'였다.
제 7판인 이 책의 머리말에서 글쓴이 중 한 명인 피터 버크홀터는 음악이란 '태양 아래 절대 새로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설사 아무리 듣는 사람인 우리의 귀에 새롭게 들릴지라도, 그것은 몇 년전, 몇 백년전, 심지어는 아주 오래된 고대 지구 그 어디에선가 어떤 이들에 의해 불리고 전파되었던 음악의 한 종류일 것이라고 말한다. 즉, 새롭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해 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21세기 현존하는 수많은 음악 장르들 역시 옛 것에 그 근본을 두고 있으며, 이 근본은 큰 범위에서 역시 '클래식'이다.
고전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옛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정의로는 그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 문학들이 아예 '고전'이라는 장르로 수 백년, 수 쳔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가르침을 주고 있듯이, 음악 장르로서의 고전도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계속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미 클래식은 뒤돌아보면 우리 앞에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와있기 때문이다. 1학기 음악의 이해 수업 시간 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클래식은 결코 여러분의 생각처럼 비싸기만 하고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음악이 아니다.' 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는데, 실제로 음악의 이해란 수업이 13년 이상 명맥을 이어오며 우리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취지에 많은 학우들이 동감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는 오늘날 클래식을 대중화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단체와 기관들의 노력에도 힘입어 실제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공연들이 그 장벽을 점차 낮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인 우리 또래의 학생들은 이러한 문화적 혜택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클래식 공연들이 '알기 쉬운', 또는 '우리 곁에 있는'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더 다양한, 그리고 젊은 계층의 클래식 향유자들을 모집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제 그 부름에 부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클래식의 노력에 우리가 진정으로 응답할 때, 이 책이 제 7판을 넘어, 8판, 9판, 그리고 영원히 사회에 존재하며 이후의 사람들에게도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음악'들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