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공모전을 한다고 해서 후보 도서들을 읽는 도중 이 책 만큼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책이 있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쳐 든 순간 처음 든 느낌은 '아.... 나 이런 책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서양 판타지 소설이나 셰익스피어는 재밌게 읽었으나 '죄와벌' 같은 자서전 같은 서양소설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닥 끌리지 않았다. 그냥 공모전 후보도서라서 펼쳐서 읽어 볼까 하다가 어느새 순식간에 책에 빠져든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수필 형태로 된 소설로 책 속에 나오는 '조르바' 또한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책의 전반적 구성은 매우 단순한데, 1900년대 초, 책만 읽고 공부만 하다가 회의감을 느낀 브루주아 출신 20대의 '나'는 광산업 일을 해보려고 크레타섬으로 떠나는데 떠나는 길에 매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온 50대 '조르바'라는 사람과 동행하게 된다. 그 둘이 크레타섬에서 광산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나와있다.
이 소설 속, '조르바'와 '나'는 생각이 매우 대비되는 인물인데, 먼저 '나'의 경우부터 살펴보자면 매우 종교지향적인 삶을 지향하고, 사랑은 순수한 것으로 몸적 욕망을 부정하며 정신적 사랑을 지향하며, 애국심 같은 '원리 원칙'을 강조하면서 살아가지만, 실상의 '나'는 조국 그리스인 동포가 위기에 쳐해있는데도 지식인으로써 아무런 활동도 하지않은 채 광산업만 하고 있고, 육체적 욕망을 부정하지만, 크레타 섬의 매우 색기 넘치는 과부를 보고 성욕에 갈등하고 고뇌한다.
이 주인공 '나'를 보고 내가 제일 어이없었던 것은 조국의 동포가 위기에 쳐하자 자신의 친구는 동포를 구하기 위해 분쟁지역에서 떠나면서 맨날 책만 읽으면서 실제론 행동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책벌레'라고 비꼰다. 그에 대해 본인도 그속의 의미를 깨닫고 창피해 하지만, 아무 행동도 나서지 않으며 오히려 나중에 친구에게 너무 책만 읽어서 육체적인 활동을 해보려고 광산업을 시작했다고 변명을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은 곡괭이질 한 번 하는 것이 없고 그냥 관리 감독만 할 뿐이다. 실제로 그 '감독'일조차도 조르바가 다 하고 자기는 그냥 구경만 할 뿐이다.
즉 그냥 말뿐이고, 행동은 하지않는 헛똑똑이에 가깝다.
반면, '조르바'라는 인물은 다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유'로, 전혀 종교적인 삶이 아닌 본능 그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여자관계도 엄청 난잡(?)하다고 할 정도로 조금만 여자가 자신에게 넘어올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어떻게든 꾀어내서 하룻밤을 하고 마는 '그'는 딱히 정해진 직업도 없이 이것저것 하면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가난한 중년이나, 자기의 삶에 누구보다도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 순수한 사랑 같은 건 없다. 조르바가 과부를 자기 침대에 데려가려고 유혹하는 것을 보고 '나'가 그러면 천국을 못 갈 것이라고 경고하자, 오히려 밤새 외로움에 떠는 과부를 혼자 두는 것이 진정 천국에 못 갈 행위라고 비판하지는 않나, 결혼을 몇 번 해봤냐고 '나'가 묻자, 3천번도 넘게 한 것 같다는 그의 대답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경지에 이르러있다.
하지만, 조르바는 중간중간 얼간이와 같은 '나'를 질타한다. 분명 성욕에 들끓어 있지만, 양심의 가책때문에 섹시한 과부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인간의 참된 욕망을 추구하라고 하면서 질타하기도 하고, 애국심에 대해서 '나'가 책에 나오는 경전같은 말을 읇조리자, 당신이 전쟁은 나가 보았냐면서 실제 전쟁경험을 통해 애국심과 자유 성취가 원래의 동기였지만, 전쟁을 하면서 점점 원래의 동기는 잃어가고 '국군'이라는 이름 하에 강간, 살해, 방화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른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도 한다.
일단 나에게 가장 공명이 되었던 책의 부분은 다른 것보다도 '조르바'와 '나'의 여자에 대한 견해의 차이였다. 비록 '나'가 여자와 사랑에 대해 훨씬 진심으로 대하나, 정작 '나'는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천치바보이다. 반대로, '조르바'는 오로지 여자의 몸만을 탐하려 하지만, 여자의 심리에 대해선 매우 정통한데 이는 '나'한테 '모든 여자들은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기를 원해요', '저렇게 예쁜 과부를 혼자서 자게 하는 건 이 마을 모든 남자들이 천국에 못 갈 것을 의미하죠.' 등과 같은 부분에서 알 수 있고, 실제로도 크레타섬에서 오스탕스 부인을 꼬시는 부분에서 매우 잘 나타나 있다. 오죽하면 조르바는 여자는 남자와 다른 부류의 '짐승'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여자의 마음에 정통하다.
하지만 그래도 '조르바'가 멋진 이유는 그래도 자신의 여자에겐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알지 못하도록 엄청 노력을 한다. 실제로 오스탕스 부인도 죽기전까지 조르바가 자신을 사랑해줌으로써 그래도 행복한 추억을 하나 더 안고 죽음에 들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정작 조르바는 오스탕스 부인이 예뻐서가 아닌 몸을 탐해서 그녀와 사랑을 했지만) 이런 행위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 속의 '나'는 현실에서의 나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다. 이상한 내가 만든 논리들에 내 솔직한 감정,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 하고, 쓸데없이 갈등했던 예전 나의 대학생활과 너무나도 비슷했기에 너무나 주인공 '나'가 더더욱 얼간이 같아보여 싫었다고 할까. 그래서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조르바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보였다. 사회로 다시 돌아가면 좀더 내 감정에 솔직해져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