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긴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신화는 원래 “세상은 왜 이런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이 굳어서 돌이 되고, 요정이 죽어서 메아리가 되고, 신이 사람을 아껴서 별자리를 만드는 등의 그리스인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설명하려고 했던 자연 현상들은 모두 오늘날에는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그리스 신화는 당시에 미처 발달하지 못했던 과학을 대체하여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도적인 여신들
그리스는 민주주의나 자유로운 토론의 역사가 비교적 일찍 등장한 것에 비해서 오랜 시간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또 여성은 본디 부족한 존재라고 여길 만큼,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 평등과는 거리가 먼 관념을 가진 나라였다. 재밌는 점은, 그런 그리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에 있어서는 여신을 남신보다 특별히 열등한 존재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생겨나던 시기가 소위 민주주의나 평등의 개념이 미처 생기기 전이었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다. 즉, 모순적이게도 여성을 괄시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평등한 토론 문화가 그리스에 자리 잡기 훨씬 이전에 나타난 신화에서 오히려 그러한 차별이 덜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신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헤라의 경우, 옛 그리스 사람들은 갑작스런 폭풍우를 헤라와 제우스의 부부 싸움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했고, 한겨울의 한파는 제우스의 바람기에 헤라가 차갑게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두 부부가 화해하면 얼음이 모두 녹고 진정한 의미의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는 헤라의 지고 싶지 않아하는 여성상을 존중했기 때문에 제우스와의 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대표적인 군신인 아테나와 아레스의 경우, 아테나는 굉장히 자비롭고 다재다능한 신으로 그려지는 반면 아레스는 이런 아테네에게 뒤처지고 싸움과 폭력만 좋아하는 한심한 신인 것처럼 묘사된다. 심지어 그리스의 수도가 아테나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된 유래는 아테나가 자신의 삼촌뻘인 포세이돈과 겨루어 이긴 결과인데, 젊은 여신임에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에 뒤지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그리스인들의 아테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역시 마찬가지로, 아프로디테는 신화에서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숭배나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프로디테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 이슈타르라는 설이 지배적인데, 그래서인지 제우스 혈족이 대다수인 올림푸스 12신 중에서 드물게도 원초적인 존재, 즉 크로노스로부터 직접 태어났다. 이렇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여신들은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지는 의미
지나치다시피 자유로운 사랑을 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등장인물들을 보다 보면 그 당시의 윤리관이나 도덕관념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들 정도인데다가, 개신교나 불교와 달리 신화로 그쳤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등 오늘날까지도 문학적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역작들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질병 이름을 짓거나 별 이름을 짓는 등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의학과 천문학 전반에 걸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의 이름을 딴 작품 캐릭터를 만든다든가 신화를 연상하는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앙으로 이어지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까지도 적지 않은 여파를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단순한 신화적인 이야기들의 집합체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