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비극 중 수록된 <안티고네>에 대해 쓴 독후감입니다.
안티고네. 그는 국가의 부당한 주권 침해에 저항하는 시민–영웅이자 남성(적)–권력에 저항한 여성의 상징으로서 기억된다. 하이몬. 일설에 따라 그저 스핑크스에 의해 희생된 인간으로만 남을 뻔 했던 그 역시 사랑을 위해, 혹은 아버지(왕)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기록됐다. 자연 속에서 썩어갈 뻔했던 ‘억울한 배신자’ 폴뤼네이케스는, 결국 신탁에 의해 체불됐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조국 테바이는 그들의 죽음 뒤에 전쟁의 상흔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모든 걸 잃고 오로지 남겨진 것은, 크레온 뿐이었다.
소포클레스의 후작 <오이디푸스 왕>에서 묘사됐던 크레온은 “대체 어떻게 왕권을 갖는 것이, 고통 없는 통치권과 권력을 갖는 것보다 저에게 더 달콤할 수 있겠습니까?”(오이디푸스 왕, 592~593행)라며 그를 의심하는 통치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개인이었다. (결과적으로 대를 이으며 이어진) 왕의 처남이라는 그의 신분은, 굳이 권력지향적인 삶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힘을 누릴 수 있지만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삶. 오이디푸스의 치세 동안, 그의 삶 역시 테바이의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 평탄하고 안정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던 그의 평온한 삶은 오이디푸스가 맞이한 비극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다. 누이 이오카스테는 비참한 운명을 못 견디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오이디푸스의 실각 후 혼란 속에서 그의 두 아들이자 크레온의 조카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사이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테바이의 위기로 이어졌다. 자신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이방인들의 대군과 함께 조국으로 쳐들어온 폴뤼네이케스와, 그에 맞서 싸운 에테오클레스 사이의 전쟁은 테바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전쟁에선 승리했지만, 크레온은 아들 메노이케우스를 잃는다.(<포이니케 여인들>) 치욕과 오욕뿐인 영광 속에서, 그는 아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테바이의 왕이 된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보여주듯,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이 많은(혹은 많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안티고네> 속 크레온 역시, 이와 유사한 행보를 보인다. 파로도스 이후 등장한 크레온은 “지배와 통치” 속에서 일그러진 권력자의 화신과도 같다. 그는 자신의 포고에 ‘신의 법’을 근거로 저항하는 안티고네를 끝내 ‘하데스의 길’로 보낸다. 대다수의 테바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하이몬의 말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신의 뜻을 찾으려 했을 뿐인데도 왕에 의해 예언자를 매수한 것으로 오해받았던 그의 과거가 무색하게도, 크레온 또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의심하고 비꼬며 신에 대한 불경한 태도마저 내비친다. 누이의 죽음까지 초래한 비극이 불러온 멸망의 위기를 아들의 희생으로 딛고 일어선 왕은, 자신 = 국가를 ‘흔들려는’ 이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상실이 그를 독재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그의 폭주를 막는 것은 신탁을 통해 전해지는 또 다른 상실의 가능성이다. 죽음을 예언하는 테이레시아스의 목소리는,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를 흔드는 것을 용납지 않았던 크레온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놓는다. 분노로 가득했던 독재자는, 혼란 속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선포하고 지시한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한다. 조카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전시’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국가, 즉 크레온의 권위는 크레온이 스스로를 국가와 분리하는 순간 신의 법으로 이양된다. 크레온의 시야를 가렸던 비극과 고통에서 비롯된 안개는, 또 다른 상실의 위기를 직면하자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혼란과 괴로움 속에서도 왕이기에 앞서 아버지이자 가정의 수호자인 크레온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너무 때늦은 것이었기에,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순 없었다. 크레온은 결국 자식과 함께 아내마저 잃고 말았다.
잇단 비극은 크레온을 검게 물들였다. 그럼에도, 남겨진 크레온이 떠안게 된 모든 비극적 결말들은 결국 크레온 스스로 초래한 일이었다. 아픔 속에서 자신을 잃고 지배와 통치 과정에서 스스로를 변질시켰던 크레온의 오만은,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망가졌던 크레온의 눈먼 영혼은, 결과적으로 그 자신의 삶을 망쳐놓았다.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자들은 죽음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지만, 크레온은 허울뿐인 왕좌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만을 기다리며 버려졌다.
잃은 것이 많은 이들일수록 집착은 심해진다. 그러나 그 아집이 결국 자신마저 망치게 된다는 것을, 조용한 핀 조명 아래 영원토록 남겨질 크레온의 한탄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