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훈 지음/ 휴머니스트/ 2005년 9월
이 책을 쓴 박영훈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눈에 많이 익은 이름이다.
이분이 번역하고 쓴, 경문에서 발간한, 수학책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의 저 두껍디 두꺼운 책들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청소년을 위한 교양서도 적잖이 내셨다. 귀한 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분이 쓴 책, 번역한 책 보지 못한다. 아예 보지 못한다.
이런 책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 주변에 없는 모양이다. 답답하다. 이런 책 있다는 거 알려주고, 권장하고, 오리엔테이션해 줄 사람 그렇게도 없는가?
수학을 포함한 자연과학 일체에 대해 깡통일 수밖에 없는, 인문학 전공인 내가 애들에게 권할 정도라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닌가. (중략)
이 책은 수학 오리엔테이션에 아주 적합한 책이다.
인류에게, 인간사회에 수학이 왜 필요하고 왜 발생했는지 그 시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고대 바빌론이 나오고 고대 이집트가 나오고, 피타고라스 플라톤 유클리드가 나온다.
저자의 서술대상은 거기에 집중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중심.
왜 그 시절 그곳을 얘기하는가?
수학만이 아니라 학문의 거의 모든 분야의 뿌리는 거기에서 발원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수학의 뿌리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라는 걸 배우거니와, 허구헌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귀따갑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꽤나 논쟁적인 국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논쟁의 규모는 가히 메가톤급이라고 할 만하다. 이른바 이원론, 일원론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저자는 관념론을 배격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건 쉽게 결판이 날 만한 사안이 아니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논쟁해도 그 논쟁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런 쟁점의 제출은 청소년을 위한 개설서의 성격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개설서는 개설서로 그쳐야 한다.
관념론자의 입장이 있다면, 균형 있게, 유물론자의 입장도 소개하면 되는 것이다.
이원론자가 있다면, 일원론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판단은 학생에게 맡기면 된다. 저자가 의도를 드러내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
하지만 이 책 전체에서, 이 부분은 큰 결함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애초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공식 암기와 문제풀이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 어린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불멸의 신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수학적 능력에서 비롯한다는 내용의 플라톤 발언을 상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이치가 수학적 질서 속에 있다는 피타고라스식의 사유체계는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는 서양사상의 핵심이라는 것도.
과연 그렇지 않은가? 데카르트도 파스칼도 수학자였다.
그들의 생각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모든 인간의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지었다.
우리는 그들이 짠 구도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생활 속에서 가족과 나누는 같잖은 이야기일지라도 저들이 그려 놓은 밑그림 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얼마나 심원하고 광대한가.
돈을 계산하거나 땅을 재는 정도의 수학은 그리스 이전에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바빌론과 이집트, 하지만 이들의 수학은 경험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경험적 세계를 초월한 수학, 그리하여 가히 신의 위치에서 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증명과 논증의 세계를 이 책은 보여준다.
이 책의 전정한 의미는 이 대목에 있을 것이다.
수학이 떡볶이값 계산하고 100미터 트랙 줄자로 선그리기 하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대목에서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런데 이거 학교선생님들이나 사교육강사들 말해주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 그들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만큼 높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학문일 것이다.
이건 참 위대한 것이지 않을 수 없다.
호랑이보다도 약하고, 개보다도 느리고, 날 수도 없는 털없는 존재가 우주의 울림, 천상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자기 존재를 한껏 높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오리엔테이션이 없어서 칠흑 어둠 속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선생님 탓만 하지 말고 이 책 읽어보기를 권한다.
하루 정도 다른 일 하지 말고 이 책에 매달려보라.
그러면 갑자기, 눈이 환해질 것이다.
블로그 noneros에서 인용(2007. 0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