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박노자의 우승열패신화를 읽으면서, 러시아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또 노르웨이 국적을 취득한 박노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담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박노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토론을 했던 허동현이라는 사람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허동현은 이분법적 판단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생각과 지향이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다원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1학기 때 수강한 정치학입문 과정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닥 다원화 사회는 아니지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타인’은 ‘악’이고, 나와 뜻을 함께하는 ‘우리’는 ‘선’이다.' 같은 판단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실제로 we-other 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소설 <무정>의 작가 이광수에 대해서 두 사람의 생각이 달랐는데, 박노자는 그가 친일을 했으니 나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허동현은 그의 일생을 훑으면서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이 정의 내리는 이광수의 삶은 달랐다. . 한 사람의 긴 인생은 '친일'로 규정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너무한'처사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는 정말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을 느꼈고 교과서를 1권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 교육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토론 주제는 기생과 매춘 여성이다. 카카오톡 뉴스를 통해서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던 여성이 직장을 그만 둔 후 취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댓글에는 '성구매자나 성매매자나 똑같다, 니가 살 가치가 있냐, 너한테 왜 일자리를 줘야되냐' 등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했다. 댓글을 읽으면서 성매매업소 근무 경력이 있는 여성들은 그 경력만을 이유로 이후에 원하는 직장에 다닐 수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들에게도 기회는 주어야 하는게 아닐까? 허동현은 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선택하여 직업으로 삼는 여성이 있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자발적으로 한 성매매라고 해서, 그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그 노동에 참여했을리가 없다. '창녀'는 수동적이고, 남성들에 의해 억압받으며, 위험에 빠져있다. 그들을 어떻게 '자발적인 창녀', '주체적인 창녀'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이후 그들은 한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국뽕‘에 심취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 내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한다는 것이 두 사람의 결론이다. 서구의 권위에 심취하여 우리의 문화를 더욱 꾸며서 보여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어려운 사정과 약자들을 무시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무속신앙을 다룬 글은 정말 재미있었다. 개항이후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무속 신앙은 박해받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무속 신앙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해 근절하려던 노력은 개발독재 시절까지 이어진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근대화'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해야 할 것 같다. 무속신앙을 탄압하고 박해했던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