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시간에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김창숙 선생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사실 책을 받고서도 책이 너무 지루하게 생겨서 읽기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책머리를 보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김창숙 선생님이 성균관대학교의 근대 대학 창설자 및 초대 총장이라는 것입니다. 평소 누구보다도 성균관대학교를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저인데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김창숙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성균관대학교는 없었을 것이고, 저는 지금쯤 김창숙 선생님의 존재는 물론 성균관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김창숙 선생님은 성균관대학교를 창설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발전에 그 이념과 방향을 정립해주셨다고 합니다. 김창숙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많은 사람들은 성균관을 그저 한국의 옛 교육기관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의 안일한 무지에 대하여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넘겼습니다.
책을 보며 또한 놀라웠던 점은 선생님의 시였습니다. 저는 자연과학도로서 아무래도 자연과학보다 인문학을 등한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문학적 소질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 때도 문학 지문, 특히 시를 보면 해석에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김창숙 선생님의 시는 보통 시와는 다르게 추상적인 문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체라 해석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반 시와는 달리 거의 모든 시가 겨레와 나라를 걱정하는 시였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김창숙 선생님의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시에 제가 지금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는 것도 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 운동가들의 처절한 독립 운동의 결과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한 제가 이렇게 역사도 모르고 편하게 사는 게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과거 일제강점기로 돌아가더라도 독립운동가 분들처럼 나라를 위해 제 자신의 젊음과 자유 더 나아가 목숨을 바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시, 산문을 하나씩 꼽자면 시는 '승로를 장가 보내며', 산문은 '아들 환기에게'입니다. '승로를 장가 보내며'에서 승로는 김창숙 선생의 아들입니다. 승로가 태어난지 백일 남짓했을 때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아들 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열 살 남짓했을 때 선생과 아들은 감옥에서 마주했습니다. 아들은 선생의 옷을 잡아끌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또 선생이 이 시를 쓰는 시점인 아들이 장가갈 무렵 선생은 늙고 병들어 아들과 함께하지 못하였고, 선생은 이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산문 '아들 환기에게'는 선생이 아들 환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시점에서도 역시 선생은 늙고 병든 상태였고,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 보자며 북경에 와줄 것을 재촉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병들어 죽어 아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와 산문 둘 다 한평생 독립 운동을 하며 정작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만큼 김창숙 선생께서 가장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던 것이 조국의 안녕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김창숙 문존'을 읽고 수많은 독립 운동가분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