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심산 김창숙이 익숙할 것이다. 학술정보관 정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조금만 걸으면 심산 김창숙의 동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 캠퍼스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밤길에 산책을 하면 조명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심산이 타계하신 뒤에도 성균관대를 지키는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처음 학교를 다니면서 꽤 무심하게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교양 교수님들의 열렬한 강의 덕에 심산의 업적들을 짧게라도 들으며 신입생 시절을 보냈다.
막학기에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신청했다. 학교를 떠날 때 쯤이 되니 더 이상 들을 전공도 없고, 세간에서는 이공계 학생에게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고 소리치기에, 등 떠밀리듯이 신청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사실 수학과 전공인 내게, 인문학은 지나치리만큼 뜬구름 잡는 학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얼굴만 알고 다시 만날 생각은 없는 먼 친척처럼 나는 인문학을 멀리 했다. 논리로 이루어진 학문을 공부하다가 인문학 강의를 들으니 혼란스럽기도 했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강연들은 많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러다 어느새 과제 마감일이 다가왔다. 시간이 닥쳐서 급하게 읽었지만, 시대순으로 책이 서술되어서 물 흐르듯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종종 심산의 시와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특히 당대의 유명한 위인들과의 스토리들이 흥미로웠다. 특히 존경하는 위인 중 하나인 도산 안창호와 관련된 심산의 평가를 재밌게 봤다.
이번 독후감에서 내가 '김창숙 문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김창숙 문존'은, 나아가서 심산 김창숙의 일생은 자연과학도들에게 인문학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세상이 수학과 과학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수학과 과학이 연구되기에 앞서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와 같은 법부터 '고마운 일이 있으면 감사를 표한다.'와 같은 예의, '금을 모아 나라를 살리자.'와 같은 애국심 등을 아우르는 그런 소양들 말이다. 사람이 가져야 할 소양을 연구하는 과목이 인문학인 것 같다. '김창숙 문존'을 읽으며 내가 느낀 심산의 인문학은 세 가지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 교육을 위한 헌신, 그리고 신념을 위한 기개이다. 유전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성균관대 학생으로서 그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 기반이 바로 심산의 인문학이다.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많이 듣는 학교 자랑이 뭘까? 바로 6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일 것이다. 성균관은 나라가 두 번이나 바뀌어도 굳건히 남아 있다. 그 긴 역사 동안 견디기 힘든 풍파들이 수없이 있었을 것이다. 많은 풍파들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가장 힘들 때, 심산은 나라를 지키고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했다. 그 덕에 성균관대학교는 유수의 대학교로 현재까지 남을 수 있었다. 비단 성균관대학교 학생이라면 심산의 생애와 신념을 가슴에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심산을 가슴 속에 품고 심산의 인문학을 실천하는 것이, 좋은 나라와 좋은 학교를 물려준 심산 김창숙의 고마움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