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떤 수업에서 쉬는 시간에 교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 수업은 어떻게, 들을 만 한가요?”라는 교수님의 물음으로 시작한 대화는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출석부를 찬찬히 살펴보시다가 나의 학년을 알아차린 교수님께서 물으셨다. “2학년이에요?”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복수전공은 무엇이냐고 하셔서 심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제 곧 3, 4학년이 되면 뭐 할 거예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잠깐 머뭇거렸다. “그냥 취업준비 아니면 대학원도 가고 싶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아직 잘은 모르겠어요.” 하며 멋쩍게 웃어보이자 교수님께서는 “그래, 한창 그런 것들 걱정할 때지…….”라고 공감해주셨다. 요즈음 부쩍 진로 고민도 깊어지고 벌써 스물두 살이 된 나는 이때까지 무엇을 이루었나 하고 자책하는 때가 많아졌다. 얼마 전 생일 때에는 예전에 친했던 친구에게 거의 1~2년 만에 연락이 왔는데 반갑기도 하면서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었다. 졸업 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는 그런 감정 없이 마냥 반갑기만 했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자면서 이번 달 말에 시간이 있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먼저 주어진 학교 과제와 스터디 모임이 떠올랐다. 그 뒤로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얘는 정말로 날짜까지 잡아서 나를 만나려고 하는 건지, 오랜만에 온 친구의 연락보다 상투적인 ‘밥 한번 먹자!’ 하는 인사가 더 그리워졌다. 그러고는 친구들과도 남자친구와도, 아무와도 상대하기 싫은 생각에 휴대폰만 하며 또 ‘나는 맨 이것만 하고 있고, 대체 뭘 이루어 가고 있는가’ 하는 자책만 하기를 반복하였다.
이는 본인 개인만의 일상, 고민이 아닐 것이다. 과방에서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풀어놓으면 그를 들은 다른 친구들 역시 공감하면서 나와 똑같은 자신들의 고민을 풀어놓는다. 진로, 인간관계, 연애 고민 나눌 것 없이 모든 주제는 행복으로 통하고 우리들의 행복은 언제 오는 것이며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다함께 고민하다가 이내 체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던 것인지, 원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별일 없이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게 정말로 자발적으로 생성된 소망이었는지 부모님의 바람과 주변 친구들의 일상이 투영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렸을 때 꿈꾸었던 어른, 이십대의 생활이 과연 이런 혼돈의 나날들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나를 만나는 스무 살 철학』의 저자는 이러한 이십대들의 불안함을 위로해주고 그들을 격려해준다. 저자가 쓴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이 처음에 나오는데, 이를 보며 위로를 받기도 했고 청춘이라는 단어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스무 살 청춘의 정체성, 불안, 선택, 놀이, 친구, 행복, 성공, 사랑에 관하여 철학적인 조언과 위로를 내놓는다. 우선 저자는 불안해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며 희망의 다른 면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무언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상반되는 개념이 존재해야 한다. 불안의 바로 뒷면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도와준다. 왜 이십대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는가에 대한 답도 제시한다. 이십대의 특징이 불안함에 자리 잡아감에 따라 그것이 전염되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조차도 저자는 인간의 본질적이면서도 진정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면서 걱정하고 또 불안에 시달리는 이십대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너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사는 삶을 살지 아니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를 따를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 예를 들어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취직에 성공하여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다른 사람들이 다 결혼할 나이 즈음에 맞춰서 결혼하는 등의 삶을 살기로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이 원래 그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가 우연히 그에 맞았을 뿐이라면 그것 또한 개인의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선택의 주체가 되는 것을 지양할 뿐이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우리의 전체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고 고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선택에 문제가 없다면 책임을 지는 자세는 좋지만, 때로는 그것을 고수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일 때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란 마땅한 시기와 사건, 태도에 따라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선택과 행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따르면 마땅한 때와 상황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수정해나가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될 수 있다. 너무 강박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선택도 항상 옳은 것도, 따라서 그것만을 좇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음에 감사하며 그것들을 염두에 두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하나의 선택이다.
어느 날은 옛날부터 알던 학원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다가 요즈음의 이십대 젊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피하려고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오신 후 한 이야기였지만 나 역시 무언가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심하기 때문에 괜히 위축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상황이 껄끄럽기도 하고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자리를 피해야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래왔다. 하지만 피하는데도 피하지는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비판이다. 애써 그 비판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 선명해지고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이런 습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었던 것이 이 책의 내용 중 소개된 루소의 일화였다. 루소는 『사회계약론』, 『에밀』과 같이 흥미로운 내용을 담은 책의 저자로서 꽤 대중적이고 개인적으로도 평소에 관심이 있던 철학자였다. 그런데 그런 루소에게도 타인의 비판이나 질타를 크게 받은 적이 있음에 놀랐는데, 그의 대처 태도는 더 놀라웠다. 자신을 내몰고 헐뜯으려 하는 세상에서 내면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직접 대면하려는 그의 자기애는 평생의 모토로 삼고 따를 만하다고 느꼈다.
늘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충동적으로라도 꼭 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는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나중에 공부를 할 때에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집중을 잘 못하고 주의산만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저자는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도서를 언급하면서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며 나를 다독여준다. 책 『나를 사랑하는 법』의 저자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하지는 말라고 하는 한편, 지금 당장 하기 싫은 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격려한다. 저자는 이 소설가를 ‘현명한 쾌락주의자’라고 표현한다.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잃지는 않는 것, 나 자신이 공부나 일을 함에 있어서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과소평가한 것만 같아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말이다. 항상 자기계발서나 조언 및 위로를 해 주는 책들이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 대단한 것처럼 한다고 꺼려했었는데 이것만큼은 큰 위로가 된다. 특히 이 책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고민들이 집합된 상담소 같은 느낌이어서 더욱 그렇다.
스무 살은 당연히도 어떤 것에서도 달인이 되기란 힘들다는 말이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 철학은 삶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되면서도 왜 나는 이러한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돌이켜 보았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아무래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부족해서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스스로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느 길로 많이 가는지만 고민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길에 맞추어 가다보니 선택에서의 주체성이 많이 부족했다. 맹목적으로 그것만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막상 다른 길을 찾아보려니 두려워서 다른 길을 찾는 일을 피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면은 물론 자신과의 대화마저도 회피해 버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했다. 이제는 답을 이해했으니 그에 따라 다른 길로 나아가 보려고 한다. 물론 그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나와 대화부터 해보려고 한다. 이 책과 여기에 소개된 여러 철학은 그 대화의 과정에 필요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