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오면서 어떤 이야기를 참 많이 반복해서 듣곤 한다. 그리고 그 관념은 어느새 나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내 주위 사람들도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기에, 나는 그 사실이 세상이 생겨날 때부터 있어왔던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도화지 같이 새하얀 누군가의 머리 속에 그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칠해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이런 관념이, 짙은 물감이 묻은 누군가의 붓이 자신의 캔버스에 닿기 전에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해 왔다. 이것이 토머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언급했던 패러다임의 변화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관념과 생각들이 다시 한 번 바뀔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들이 예술의 창작 주체를 '천재'에서 찾고 이를 신봉했다면,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노력'과 팀을 이끌어주는 '강력한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하지 않아서이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리더의 부족함때문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다양한 학과가 특정한 목적의식 없이 자신이 하고싶은 연구를 하며 어우러지는 MIT미디어랩에 속해있는 저자들은 그런 관념을 부정하고 있다. 이제 세상은 강력한 중앙권력으로부터 '푸시'됨으로써 운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각의 부분에서 생겨난 다양한 집합체들이 만든 정보와 자원들이 모여들어 유동적이고 수평적인 구조를 이루는 '풀'전략이 더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가 브리태니커 사전보다 위키피디아 사전을 더 많이,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전략을 표현하는 단적인 예이다. 학과는 어떤가?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외부에서 누군가의 학과가 마치 그 학문에 대한 전문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가지의 학문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없다. 어떠한 학문은 다양한 학문들과의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그 유용성을 획득할 수 있고, 한 학문의 중대한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동떨어진 학문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저자들은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인터넷에 올리고, 이를 푼 사람에게 소정의 상금을 주는 크라우드 소싱 방법을 사용했을 때 문제와 관련된 학문에서 거리가 먼 사람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를 풀게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박사들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학부생이나 중퇴자가 푸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전통적인 사고 방식 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어 비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전세계, 특히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비트코인 열풍 역시 투기적인 부분만 언론에 비치고 있지만 사실 비트코인 또한 중앙 화폐기관과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는 은행에 대한 대항으로 창조되었다. 은행은 투자자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화폐를 과도하게 기업들에게 빌려주고 있다는 것이 비트코인 개발자의 생각이었고, 그는 정교한 코드와 해킹이 거의 불가능한 블록체인이라는 방식을 도입해 비트코인이라는 가상 화폐를 만든 것이다. 참고로 비트코인은 이론상으로 4년마다 채굴량이 반으로 떨어지게끔 설계되어 있고, 책 저자의 생각에 따르면 앞으로 비트코인이 망할 때까지 적어도 64번의 반감기가 올 것이라고 한다. 과연 중앙의 권력과 대비되는 비트코인이라는 화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난 투자는 하지 않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