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라는 것은 ‘자유’를 상징한다. ‘자유’라는 것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나에게 ‘자유’란 어떠한 고민도 의무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상의 <날개> 에서의 ‘자유’란 어떤 것을 의미하며 어떤 상태로부터 나아가고자하는 것일까? <날개>는 ‘나’라는 인물을 통해 한 개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나’라는 익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과연 현재의 ‘내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날개>의 주요 공간적 배경은 ‘집 안’이다. 흔히 생각하는 집이란, 그 어느 공간보다도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날개>에서의 ‘집’은 그리 편안하다고 해석되지 않는다. 볕도 들지 않고 빈대도 들끓는,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이러한 방에서 ‘나’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오히려 편안한 아내의 방에서 잤을 때 피곤함을 느끼며 자신의 침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약간은 모순적이기도 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그에게 ‘방’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삶은 크게 방 안에서의 삶과 밖에서의 삶, 두 가지로 나뉜다. 방 안에서의 삶은 흔히 생각되어지는 ‘삶’이란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기 의지가 없이 아내의 인형처럼 살아가며, 인간이라면 흔히 갖는 물질에 대한 욕심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쥐어주는 돈을 변소에 버리고 주어진 옷과 밥으로만 살아가는 그는 짧은 외출에도 크게 지친다. 이는 마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 사람의 지침과 비슷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방’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세상이자 곧 자신의 전부이며, 방 밖의 세상은 마주하지 못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넘어야함을 알지만 넘어서기 쉽지 않은, 자신이 설정한 스스로의 한계이자, 곧 성장의 첫 발판일 것이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아내의 통제 아래서 이루어져왔다. 그의 행동반경은 그의 방 안 뿐이었고 그가 먹고 자고 입는 것, 심지어는 생활시간까지 모두 아내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그가 그러한 통제에서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자 아내는 약을 먹이면서까지 그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 했다. 하지만 그런 아내의 노력은 그가 낮에 외출을 하게 됨으로써 실패했다. 낮에 외출을 한다는 것은 그가 지켜왔던 아내의 통제시간을 자발적으로 어긴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론 화를 내선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의 아내는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도둑질이나 계집질을 하는 것은 아니냐고 의심하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이에 남편도 화가 나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참아 넘기는데 이러한 모습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의 통제가 익숙해져 자동으로 그에 순응하는, 분명 아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아내를 의심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명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그리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오해를 풀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고자한다. 이는 어쩌면 아내의 통제 하에 살아온 이전까지의 자신의 삶을 회복하려하지 않는, 모순에 대항할 힘을 잃은 그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날개’라는 단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날개라는 것은 흔히 ‘자유’ 또는 ‘해방’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의 ‘날개’란 그가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을 통해 그의 날개가 처음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인공의 날개’는 무엇이며 새로 돋아나는 날개는 무엇일까. 이전까지 그는 아내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살았으며 그 안에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였다. 그랬기에 그가 외출을 하며 자아를 찾기 전 그의 자아는 온전히 그의 아내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마치 아내가 만든 인형의 집에서 살아온 그의 자아에는 ‘인공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러한 그가 간지러움을 느낀다. 또한 이전까지의 자신의 자아가 ‘인공적’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의 자아(날개라 표현된)’를 발견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의미한다. 비틀거리며 거리를 걸어온 그가 날개를 외치는 장면은 마치 아기 새가 첫 날개 짓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아기 새는 첫 비행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날개 짓은 곧 남은 삶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도 자아를 찾은 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자기 암시적 말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그가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졌으며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날개>속의 ‘나’는 분명 생활의 모순됨은 깨닫고 있지만 그를 깰 용기는 아직 부족한, 하지만 이내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주변 환경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나’로 제시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대입하여 독자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혹자는 그 시발점조차 찾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한 이들을 위해 <날개>는 친절히 그 여정을 풀어내었다. 완벽히 해결된 결말이 아닌 ‘나’의 의지어린 말로 끝을 맺은 <날개>는 이후 상황(정체성을 찾은 후의)을 독자의 삶에서 풀어내길 바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