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논어'라 하면 떠올리는 인상은 대부분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당연히 나 역시도 그랬다.
논어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비단 논어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나 같은 비전공생들이나 비전문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학기에 성균논어 수업을 처음 들으면서 담당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하셨던 첫 마디가 '여러분, 논어 재미없죠?' 였으니까.
그렇다. 기원전에 발행된 책에서 '재미'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일지도 모른다. 몇 천년이 흐른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 역시 또 다른 학문이자 종교인 크리스트교의 경전인 성경의 예를 살펴보면 '경전'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엄격한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비록 각각의 분파마다 그것을 성경에 적힌 그대로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크리스트교는 또한 종교 내부에서 신자들의 끊임없는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에 나타난 구절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고, 실제로 새로운 해석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적인 성경의 해석과 이를 통한 생활 속의 차용은 크리스트교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멸되지 않고 세계 3대 보편 종교이자 강력한 학문으로서 남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유교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이와 같은 새로운 해석을 통한 현실에의 의미 부여에 힘쓰고 있다. 기존에 내가 가장 거부감을 많이 가진 유교 풍습 중 하나가 제사였는데, 이와 관련된 전공 수업과 논어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논어에서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한데, 제사는 사실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따라서 제사상을 차려놓는다고 해도 실제로 조상이 와서 이것을 잡수시고 가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상님이 온 것처럼' 행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준비하는 사람의 실정과 형편에 맞게, 그리고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먹을 수 있게끔 차리는 것이 진정한 제사이며, 옛 방식대로 일일이 따라서 차리는 것보다는 달라진 세상과 세태에 맞게 축소하거나 변형하여 차리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집만 해도 그렇지만, 이 경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경전 구절에 적혀진 '있는 그대로'를 따르는 것을 마냥 진리라고 따르는 것에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과거의 종갓집 며느리의 경우, 많은 제사가 있는 만큼 집에 많은 수의 하인들과 노비가 있었기에 그 스스로 제삿일을 직접 한다기보다는 지시하는 것에 가까웠겠지만, 오늘날의 경우 집에 가사 도우미가 있는 집들은 드물고 제사를 지내는 여성들 또한 자신의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제삿상을 차리는 것을 '여성 혼자만의 일'이라고 맡겨두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일이 대상자들 간의 협의와 경전 재해석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요즘은 그래도 '논어'에서 말하고 있는 진짜 의미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경전에 대한 맹목적인, 그리고 보수적인 믿음이 얼마나 큰 폐해를 불러오는 지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테러와 살상으로부터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전을 배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여 정립하는 것이 사회의 발전과 안녕에 진정한 도움이 됨을 이번 논어 여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