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시절이었을 때,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영화화되어 개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단순히 SF영화인줄로만 알고 볼려고 했는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여서 보지 못하였다. 언젠가 성인이 되고나면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줄곧 잊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고,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펼쳐들었는데,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으로,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에 놀랐다. 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보면 인간의 고뇌, 존재에 대한 사유, 인류애 등등 철학적이고 심오한 문제들을 진지한 문체로 다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서는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책을 펼치고 한동안은 책을 정독하려고 노력했다. 문단부호라든지, 큰 따옴표나 작은 따옴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대화체를 대화체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작중 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대명사나 직업명사를 이용하여 상황을 서술하고 있어서 이 대명사가 그 사람을 가리키는 건지 이 사람을 가리키는 건지 파악하기 위해서 몇번이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게 된다. 마치 내가 눈이 먼 듯한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눈이 먼 듯한 답답함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겠거니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정말 답답했다. 이래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겠다 싶은 마음에 영화를 결제하였고 영화를 다본후 다시 책을 읽게 되었더니 잘 읽히게 되었다.
작중에서는 원인도 모르게 사람들이 눈이 멀어가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이 증상이 아타난 사람들을 격리시켰는데, 전염속도가 너무 빨라 머지않아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된다. 하지만 최초 발생자의 아내는 이 증상에 면역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수용소로 함께 들어가게 되는 데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과 수용소에서 탈출한 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흡사 문명이 이룩되기 이전의 세상처럼 지배구조가 형성된다. 질서유지를 하던 군인들도 모두 눈이 멀어버려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생긴다. 보급품 창고를 점령하여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만 보급품을 주는 악의 무리부터, 그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사람, 몸을 파는 사람, 반발하는 사람 등이 나오는데, 의사의 아내는 이를 모두 지켜본다. 수용소 바깥세상의 사람들도 모두 눈이 멀어 보급품이 끊겨서 의사의 아내를 필두로 아내는 수용소를 탈출하게 된다. 바깥 세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길 위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대형마트에는 진열되어 있던 물품들이 모두 어질러져 있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다니는 아비규환의 상황이다. 탈출한 사람들은 한 가정집에 들어가서 같이 생활하는데, 그곳에서 탐욕을 버린 인간 본연의 모습과 웃음을 되찾은 그들은 시력을 되찾으면서 희망을 갖게 된다.눈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보이게 된 것이다. 물질적 소유와 탐욕에 눈이 멀어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소설이 주는 메세지 중에서도 나는 특히 눈이 멀지 않은 아내가 가진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모두가 눈이 멀어 있는 상황에서 혼자만 시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내에게 의존하는데 아내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인도하고 질서를 유지한다. 수용소를 함께 탈출한 사람들도 아내 덕분에 허례허식을 벗어던진 인간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하지만 수용소를 나와서 남편에게 심경고백을 하는 장면에서 아내의 입장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자신도 차라리 눈이 멀어버렸으면, 남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안가진다면 하고 바랄때가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있으면서도 떨쳐내고 싶은 부담감, 시력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남들처럼 눈이 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만큼 압박감에 시달렸던 대목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부모님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아내의 책임감이 가족을 부양하는 부모님의 책임감과 다를 것이 있을까.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기에 100%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통해 부모님의 어깨에 얹힌 무게가 어느 정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