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맨서>, 원형으로써의 판타지
“뉴로맨서. 사자의 땅으로 가는 좁은 통로. 너희들이 지금 있는 곳 말이야. 친구.내 여주인 마리 프랑스가 이 길을 준비했지만, 그녀의 주인이 목을 졸라 죽이는 바람에 나는 그녀가 세워 놓은 예정을 읽지 못했어. 뉴로는 신경, 은빛 길을 뜻해. 로맨서는 마술사. 나는 죽은 자들을 불러내지. 하지만 아니야 친구.
소년이 춤추듯 움직이자 갈색 발이 모래 위에 자국을 남겼다.
내가 바로 사자이자 그들의 땅이야.”
윌리엄 깁슨, 뉴로맨서. p 379.
고전이 갖는 매력은, 굳건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잎사귀들에서 뿌리의 흔적을 찾는 데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너무 뻔하고 시시하게 느껴질 만한 익숙한 이야기들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 시절 그 순간들에 어떻게 피어났는지를 그려보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때의 오래된 것은, 낡은 것과는 엄밀하게 다르다.
게임 <바이오쇼크> 속 아르데타 양식이 갖는 매력을 떠올리다 거슬러 올라간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 속의 세계관 역시, 그런 의미에서 매력적이다. 사이버펑크의 원형으로써의 <뉴로맨서> 세계관은, 지독한 디스토피아로 그려지는 수많은 미래상의 이미지들의 중첩 너머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왠지 모를 일본풍의 침울한 도시에는 마약, 불법시술, 신체개조, 섹스, 닌자 등이 담겨있다. 지금에서야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A.I는 이미 소설 속에서 최후의 흑막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현실감이 들 법하면 이질적이다. 어쩌면 뻔하고 뻔할 이야기처럼 느껴질 그 모든 것들이 매력적인 것은, 원형으로써의 이야기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성의 힘이다.
<뉴로맨서>가 만약 그저 새롭기만 할 뿐인 평범한 SF소설이었다면, 소설은 이토록 매력적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뉴로맨서>에서 수많은 가지들을 뻗어나게 만든 힘은, 오히려 컴퓨터의 ‘컴’자도 몰랐던 컴맹이었던 윌리엄 깁슨의 빛나는 상상력이 그의 문장력과 결합될 때 나온다. 세련되고 기계적인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처연하고 침울한 도시의 느낌을 자아내는 깁슨의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그가 상상한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매끄럽게 길을 자아낸다. “항구의 하늘 색은 방송 끝난 텔레비전 화면 색이었다.”와 같은 고전화된 문장이 아니더라도, 그의 문장은 단순히 하위문화로 여겨지기만 하는 일반적인 SF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들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그 꿈 위에서 수많은 상상력들은 춤을 춘다. 모든 것이 쉽게 영상화 돼 그림이 되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점점 더 화려하고 멋진 ‘비주얼’이 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들은 점점 뒷전으로 밀린다. 소설에서도, 게임에서도, 영화에서도 점점 좋은 스토리는 밀려나가고, 그 자리는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무언가들로만 꾸역꾸역 채워진다. 잊혀진 세계의 버려진 그림자 속에서의 <뉴로맨서>는, 그렇기에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이야기들을 소진하다 못해 무덤에 갔던 이야기들마저 죄다 끄집어 올리는 세상을 걸어갈수록, 새 시대의 비전을 그려줄 새로운 <뉴로맨서>를 그려본다.
그렇게 옛 이야기를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꿈꾼다. “꿈은 얼음처럼 천천히 자라나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