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나는 활자와 목소리에 민감했다. 한국 작가가 쓴 책은 너무나도 가까웠다. 책을 펴들어 단 하나의 문장, 단어만 봤음에도 불구하고 구역질이 일어나고, 누군가의 살갗이 불쾌하게 나의 맨살에 닿아오는 느낌을 받고, 실체 없는 덩어리에 덮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나와 가까운 정도에 따라 달라, 일본 작가가 쓴 책 역시 한국에 비할 바는 못 되었으나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그것은 정서적 거리가 먼 작가들에게로 갈수록 옅어졌다. 그런 시절에 내가 기껍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있다면, 바로 김유진의 ‘늑대의 문장’이었다. 이는 내게서 너무 멀어 낯설게 느껴지지도, 너무 가까워 버둥거리며 읽게 되지도 않았다. 내 발끝과 그의 발끝이 닿지 않지만 서로의 발끝이 시야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이 작가는 단문으로도 문장을, 문단을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내게 이 작가만큼 잘 쓰는 작가는 현대 작가 중 없었고, 나는 이 작가를 통해 글이 무엇인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워나갔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감히 어떻게 왜 좋아하는지 알아낼 수 없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이 글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수록된 작품 중 대표작인 <늑대의 문장>을 분석해보았다.
<늑대의 문장>의 중심은 소녀다. 소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적인 강함이다. 그가 사는 세계는 이분법적으로 나뉜다. 치유와 감쌈으로 대변되는 이모의 세계, 그리고 혐오와 공격으로 대변되는 마을 주민과 어미의 세계이다. 이모는 평소 존재감이 없고, 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지도 않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소녀가 가는 곳을 따라다니며 그의 곁을 지키고, 그로 인해 욕을 먹지만 그를 침묵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존재하고 공간을 지키며 사람을 기다리는 둥지이다. 이는 그의 방에서도 잘 드러나는 점인데, 그의 존재감은 그가 바느질할 때 드러나며, 그의 방은 천으로 만들어진 고치를 닮아있다. 또한 소녀가 아비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화장실에 틀혀박혀 있다가 나왔을 때, 고치에서 성장해 나왔다는 의미로 나비를 그의 옷에 수놓아주는데 이 나비가 큰 하나의 나비가 아니라 작은 여러 마리의 나비라는 것도 그의 유약함과 더불어 존재하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의 거대하고 강한 공격성이 아니라, 유약한 존재들이 모여 강해지는 유대를 보이는 것이다.
반면 마을 주민과 어미는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그들은 전염병이 가져다주는 죽음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들은 생존에 급급해 타인을 배척하고, 키우던 개를 버리고 학대하며 그들을 무찔러야 하는 적으로 여긴다. 죽음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은 모두 배척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적, 키우던 개를 학대하고 버림으로써 만들어진 늑대와, 억지로 동물원에 가둬졌다가 탈출함으로써 야생성을 되찾은 늑대를 연결 지어 그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늑대를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은 늑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녀와 소녀의 가족을 잔인하다고 배척하던 마을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 비해 육감적이고 동물적인 몸을 가진 소녀의 어미도 제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동물에 맞서기 위해 동물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소녀는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처음 쌍둥이 아이가 폭사했지만 눈에서 그의 생명력을 느꼈을 때 소녀는 괴리감과 공포를 느끼고, 그가 마치 오소리나 고양이와도 같다고 느꼈다. 이는 그에게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아닌 동물로서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도로 잡힌 늑대에게서, 늑대의 눈에서 ‘눈만이 살아 자신의 일시적 죽음을, 아니, 죽을 수도 없는 무력함을 목도하고’ 있는 것을 느낀 소녀는 그때부터 반응을 달리한다. 그는 그 순간 늑대의 자유를 빼앗은 인간의 세계를 적대시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이제 무덤과 시체는 병든 자연이 된다. 무덤과 시체는 섬을 둘러싸고 육지의 인간이 몰려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소녀는 이제 이모의 방처럼 모든 것을 품고 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소녀는 상처를 받고 그것을 치유하는 게 아닌, 상처를 주는 쪽에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을 바란다. 늑대의 명료한 눈빛이 아니라 겁에 먹힌 눈을 하는 어미의 쪽이나, 그를 안간힘을 다해 막으려고 애쓰지만 실패하는 이모의 쪽이나 그에겐 같아 보인다. 그에겐 인간을 죽이고 자유를 찾으려 드는 늑대의 눈만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깨닫는다. 그가 늑대와 함께하려면 이모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늑대를 품어 달래며 키우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녀는 늑대에게 끌려가며, 늑대와 같은 눈을 했던 그 아이에게 이모와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