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니체와 같은 사상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능력의 차원을 넘어서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네 인생을 집에서 묘지로 가는 여정으로 비유한다면, 내가 사는 인생에서의 여정은 수없이 많은 묘지 중에서 나의 흥미와 사회적 요구를 모두를 부분적으로나마 만족시킬 수 있는 경로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요구를 평균적인 수준으로 만족시키고 나머지의 모든 시간을 개인적 흥미를 만족시키는 것에 몰두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나의 행위는 사회적인 인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때때로 주변 사람들의 조언, 체득한 지식에 의해 경로를 변경하기도, 완전히 목적지를 재설정하기도 할 것이기에 결국 최종적으로 도착한 묘지가 처음 출발할 때의 그것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러한 나와는 다르게 니체의 여정은 크게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처음 정한 묘지로 나아가는 것에 있어서 사회적 요구가 방해된다면 사회적 요구의 허구성을 주장하며 나아가 폐기시켜 버릴 것이며 체득한 지식이 발목을 잡는다면 체득한 지식을 엎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도착한 묘지는 처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두 특성의 차이는 mbti의 한 요소인 p(인식형)과 j(계획형)의 특징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식형인 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이 속한 사회 그 자체를 부정해버릴 수 있는 계획형의 니체나 마르크스의 이론들을 보며 가끔 놀라움이나 대단함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니체 자체의 위대함을 단순히 성격유형의 차이로 설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큰 오류이며 잘못이다. 니체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위대한 사상가이다. 하이데거,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등 현대 철학의 대가들이 니체의 사상을 발전시킨 자신만의 해석을 발표한 것은 물론이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학자들이 니체-마르크스, 니체-페미니즘 등등의 접합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범인이자 문외한인 내가 니체의 사상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는 조금 다르다. 니체는 그의 저서들을 통해 "위버멘쉬 사상"과 "영원회귀 사상"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는데, 이는 기존의 가치판단을 부정함으로써 철학이 단순히 세계에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서서 변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위버멘쉬 사상"을 보면 전통적 가치의 파괴가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신의 몰락은 절대적 신으로 대변하는 가치의 파괴를 의미하며 이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붕괴로 이어진다. 니체는 이러한 혼돈의 상태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생각했으며, 이러한 혼돈 속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의지를 권력의지라고 불렀다. 그러한 혼돈의 상태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상태를 초인이라는 의미의 위버멘쉬라고 정의하였으며 결국 위버멘쉬 자체도 스스로를 극복해야 하기에 그 자체로 어떤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또한 이를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서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영원회귀 사상"과 연결시키면 그 유명한 비유인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 아이의 비유까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니체의 사상들은 그의 여러 저작들에 의해 연결되므로 니체의 책들을 바로 읽는 것보다는 그러한 해석에 대한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한 니체 입문은 그의 끝없는 비유를 해석하지 못하고 책을 붙잡은채 이주일을 고분분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했으며, 결국 절반 정도 밖에 읽지 못한채 반납해야 했다. 그렇기에 니체의 사상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채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다면 감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저자 고병권은 이 책을 총 3개의 장으로 구성해 우리의 이해를 도왔는데, 첫번째 장에서는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두번째 장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여기에서 나온 사상과 같이 비교해볼 수 있는 니체의 다른 저작들의 사상들을 통합해 니체의 사상으로 귀결시킨다. 마지막 세번재 장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문학적 상징들과 장치를 되짚어 봄으로써 그것에 대한 해석을 도와주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니체의 주요한 연구자들, 그들의 주요 저작들을 소개하며 독자가 능동적으로 니체의 사상을 익힐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책을 읽으며 고민했던 부분은, 대한민국에 똑똑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라는 왜 지혜롭지 않을까라는 부분이다. 앞서 읽었던 모든 책도 그렇듯이 이 책도 더할 나위 없다. 잘 요약했으며, 통합하고 추가했다. 그런데 왜 니체를 따라 망치를 들어서 인류 역사 이래의 세워진 가치의 틀을 부수려하는 이가 없는 것일까. 왜 대학교 입시, 취업, 결혼, 노후로 이어지는 무한 경쟁 좋아하는 이 나라가 세운 마땅히 무너트려야 할 경쟁의 벽을 선뜻 부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왜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회의 조그마한 소모품이 되어 보내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질문도 없고 답도 없는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인문학과 대중들의 괴리감이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 하지만 삶이 팍팍한 대중들은 돈이 되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인문학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가 설정한 인생의 가치에 있어서 고민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삶, 사회가 제시해주는 인생의 그림, 그리고 그 안에는 인문학이 포함되지 않는다. 절대자가 몰락한 후, 옳고 그름은 논쟁과 무력의 문제가 되었고, 그 논쟁과 무력의 기저에는 자본이 있었다. 그렇게 일전에 신을 죽일 수 있었던 인문학은 자본의 모습으로 다시 부활한 신에 죽었다. 그러니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니체와 같은 사상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그의 눈높이로 고안한 그의 사상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쩌면 딛고 올라선 그들의 어깨 위에서 더 먼 곳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돋보인다. 니체에 대해서 강의를 할 필요도, 논문을 쓸 필요도 없는 우리로써는 니체의 사상들을 그 자체로 음미하고, 뿌리를 내려 견뎌야 할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면 충분하다. 그 밖에 무엇이 필요할까. 그러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 그저 읽고 느끼고 사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