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다르게 생각할 듯하다. 서로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대화가 잘 안될까? 의견충돌이 일어나 싸우지는 않을까? 평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이 중요하다고는 느끼지만 왜 중요하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는 못하는 나이기에,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책에 나오는 인문학자는 문화평론가이자 경희대학교 교수이신 도정일 교수님이시다. 영문학을 전공하셨고, 문학이나 사회에 대해 예리한 비평칼럼을 써오셨다. 우리 사회에 인문학을 뿌리내리기위해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도 하고 있으며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기도 한 권위 있는 인문학자이시다. 또 한명의 등장인물은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이시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책을 써오신 분이시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알 것이다. 오래전부터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를 강조하시는 분이기에 인문학을 생물학으로 설명하시는데 능통하시다 못해 즐기시는 것 같았다.
인문학과 과학의 시작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을 말하기 전에 인문학과 과학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인문학의 시초는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자연과학자는 신화를 기막힌 구라쟁이가 만든 픽션이라고 하는데, 동시에 생물학적 기반도 같이 설명한다. 동서양 어느 부족이든 자기신화를 가지고 있다. 신화는 왜 만들어졌을까? 고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자연사회가 너무 험난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나보다. 천둥이 치면 하늘이 노하신거니, 평소행동을 잘 처신하자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켜줄 어떤 수호신을 상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자기기만이다. 자신과 부족들을 속이는 긍정적인 기만. 현대인들도 사실 많은 자기기만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다 생존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강한 신화를 가진 부족들은 살아남고, 그들의 신화를 전파시켰다. 어찌 보면 강한부족의 신화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신화가 잘 전파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 설득력을 갖추어야하였다. 과학이라고 까진 말 못하겠으나 높은 개연성을 가진 신화들은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전해진다.
그럼 과학은 왜 생겨났는가? 신화는 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알고 이해하는 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신화는 철저히 자연과 초자연을 분리시키지 않는 설명방식이다.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어떤 힘을 빌려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해는 왜 뜨고 지는 거지?’ 여기에 대해 그리스 신화는 “아폴론이 태양마차를 몰고 올라왔다가 가기 때문이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세계관에 영 호기심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세상을 설명하는 신화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적 사고는 신화를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야기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겠구나 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증명하고, 논쟁하기 시작하며 과학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와 과학이 별개였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 속에 과학이 등장했다.
인문학과 과학의 재회
그래서 고대, 중세까지만 해도 철학과 과학은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화석을 보면서 예전에 존재하였지만 멸종한 동물들을 공부하였다. 진화학을 연구한 셈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믿을 수 없는 조각, 그림을 창조해내기도 했지만 뛰어난 해부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다 새로운 방법론이 개발되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이러한 둘의 관계에 너무 괴리가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회과학에는 실패담이 아주 많다. 대표적 예가 미국의 월맹 전쟁 결과 예측이다. 비 수량적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까닭에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인간성을 잃은 유전공학은 그 반대의 사례다. 이에 반해 에드워드 윌슨은 그의 저서 ‘통섭’에서 낙관적 미래를 그린다. 머지않아 사회과학 분과들이 대부분 생물학과 연계하여 큰 의미의 인문학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성이 해낼 가장 위대한 과업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통합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이 과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이 다양화, 전문화되면서 남의 울타리 넘어서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한 우물만 파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통합하지 않으면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가령 행동경제학에서는 심리학을 사용해야만 연구가 가능하고, 생물정보학에서는 수학, 통계학을 사용해야만 연구가 진전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앞으로 어떤 학문의 어느 부문에서 융합이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화론에서처럼 ‘앞으로 살아남을 놈이 누군지는 모른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