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44장에는
이름과 도 중에 어떤 것이 참된가? (名與身孰親)
몸과 돈 중에 어떤 것이 소중한가? (身與貨孰多)
이런 구절이 있는데,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경험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엔 더 많은 지식(名)을 소유하고 싶었고(欲), 그로 말미암아 무엇이든 잘 하고 싶었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다른 친구들보다’ 무엇이든 잘 하고 싶었다. 욕심을 내어 많은 활동에 참여했고, 온갖 대회에 나갔다. 성적은 좋았지만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무척이나 받았고, 나는 이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있는 체육 시간도 시간이 아까워서, 혹은 몸을 움직이기 싫어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말 쯤에는, 내 몸무게는 이전보다 10키로가 넘게 늘어나 있었고, 170이라는 키에 80키로 가까이의 중증도 비만이 되었다. 내 몸이 심각한 이상을 표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해 겨울 방학에 목과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통증이 심해지더니 결국에는 손과 다리까지 저려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X-ray, MRI를 비롯한 온갖 검사를 받았었는데, 알고 보니 목은 구부정한 자세와 오래 책을 들여다보며 움직이지 않는 습관으로 뼈가 심각하게 비정상적으로 휘어 있는 상태였고, 살이 쪄 허리가 체중 부하를 견디지 못해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족이나 선생님들은 고3 1년만 견디라며,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처럼 이야기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이전과 같이 살아야 했다. 1년 내내 공부를 하며 나는 사지의 통증에 시달렸고, 근육이완제를 먹었고, 아파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또 다시 폭식으로 이어졌다. 입시가 끝나고 나서 내게 남은 건 대학 합격증과 완전히 망가진 목, 그리고 90키로가 넘는 고도비만인 몸이었다.
마법처럼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내 몸은 여전히 아팠고, 살이 쪄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러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헬스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천천히 걷기만 해도 힘이 들었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보여준 동작의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멈추어 있는 것에 익숙한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운동을 하면 이상하게 조금 덜해지던 통증 때문에 나는 운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살고(生) 싶었다. 하루에 2시간씩, 2시간 반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간식과 야식도 끊었고, 집에서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건강한 채소 반찬과 장국을 먹었다. 점점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달, 어느새 몸무게가 10키로 가량 줄어있었고, 목과 허리의 통증 때문에 잠 못 자는 일도 없어졌다.
그 이후 대학에 와서도 꾸준히 운동과 식이요법을 했고 지금은 20키로 정도 감량해 지나치게 무리를 하지 않는 이상 허리가 아픈 일이 거의 없다. 목의 뼈는 돌이키기가 어려워 아직도 종종 아프지만, 피도 통하지 않아 어지럽고 이명까지 들렸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고등학교 때의 나를 알던 친구들은 내가 지금 참 보기가 좋고, 밝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내 하루하루의 삶의 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올랐음을 내가 스스로 느낀다. 이 경험은 도덕경 44장의 질문에 대한 나의 절실한 답변이자, 앞으로 내 삶의 지표이기도 하다.
도덕경 50장에는
죽고 죽이는 싸움판에서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죽는다. (出生入死)
라는 말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의 나는 죽고 죽이는 무한 경쟁의 싸움판에서 허우적거리며 점점 죽음에 가깝게 가고 있었다. 자신을 ‘지식소매상’으로 불러달라는 작가 유시민은 정치판에서 빠져나오게 된 일유를 TV 프로그램에서 한번 밝힌 바 있다. 그는 정치를 그만두길 결정할 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치를 했던 근 10년 동안의 자신의 사진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는 그 자신의 얼굴이 날카롭고, 고통스러워 보여 ‘이렇게 인생을 더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정치를 그만두었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그도 나처럼 죽고 죽이는 싸움판에서 죽음을 향해가는 자신을 절절히 느꼈으리라. 이야기를 마치고 웃는 그의 얼굴은 참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도덕경 76장에는 산 사람은 부드럽고 (人之生也柔弱) 라는 구절이 있다. 나도 지금의 부드러운 나의 몸이, 맑은 나의 얼굴이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