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자기 모름을 아는 것
2013313660 배유나
나는 수년 전, 외고에 3년간 재학할 때는 물론 수능 시험에 응시하고 대학에 올 때까지 내가 무언가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래 평균에 비해서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고, 그 또래를 평가하는 수학능력시험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니 평균에 비해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의 양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 그 생각이 조금 깨졌다.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학원 강사들에 의해서 부질없고 의미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만화나 게임에 애정을 가지는 것은 물론 직접 제작하는데도 소질을 보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예술이나 철학, 역사 그리고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취미로 시작했으나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소질을 보이는 사람들도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 그리고 그 시험에 출제되는 내용만 3년간 죽어라 공부했고, 대학에 와서 그 지식은 더 이상 내 인생에 대단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신들이 사랑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수많은 지성인들이 캠퍼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유럽여행 겸 교환학생으로 반년간 한국을 떠나있었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이 정확히 71장에 그대로 적혀있었다. 내가 아무리 6개월 동안 유럽의 다양한 도시를 경험하고, 그 곳에서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나는 그 6개월 간의 서울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 두고 간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sns만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6개월동안 네덜란드의 문화와 날씨와 지냈던 동네에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 곳이 어떤지,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어떤지 알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나에 비해 세상이 점점 커지고, 세상에 비해 내가 점점 작아지는 이런 경험들이 충격이었고 혼란스러웠었다. 내가 너무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나의 지나온 10대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라 위축되는 마음이 자꾸 들어 힘들기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난 약 5년간의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우물안의 개구리로 10대 시절을 보냈는가를 정말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이제 취업시장이라는 거대하고 막막한 세계 앞에 서 있게 된 나는 또 얼마나 세상에 열정 넘치고 재능 있는 청년들이 많은가를 깨달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라 시간과, 공간과, 개념의 감옥에 갇혀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과 지혜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무지함을 이제 어느정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20대 초반에 내가 여러 경험들로 인해서 세상의 넓음을 배울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또 그로 인해 내가 20대와 3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생의 지혜와 세상의 수많은 지식들이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남의 앎을 아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바라지 않는다. 다만, 더 넓은 세상을 감사하게 마주하며 기쁜 마음으로 조금씩 삶을 배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 더 많은 독서를 하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도록 부지런한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