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천하에서 가장 유연한 것이
‘유연한 것이 굳센 것을 부린다.’ 즉,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말처럼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중에 이에 담겨진 의미를 알게 되면서 이 구절은 나의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은 구절로 남게 되었던 것 같다. ‘부드러움이 강하다’라는 말은 바로 강함으로 사람을 다스리고자 하면 그 사람을 다스릴 수 없거나, 원한을 품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부드러움으로 사람을 대하고자 하면 도리어 그가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누군가를 부드러움으로 대할 때 만물을 잘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강해야지만 누군가를 다스릴 수 있다는 지금까지의 나의 의문과 편견을 깨고, 나의 태도를 바꾸는데 도움을 주는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 남이 보기에는 사이가 좋은 남매로 보일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빠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오빠는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굳이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도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행동을 할 때마다 나를 지적하고 혼을 냈다. 나는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오빠에게 그러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다른 친구들은 오빠와 친구같이 지내며 놀고 장난치기도 하는데, 나에게 오빠는 아빠보다도 무섭고 고지식하며 엄격한 존재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빠가 나를 가르치려고 할 때마다 나 역시 항상 오빠에게 반항하고 화를 내곤 했으며, 이렇다 보니 사소한 주제로 시작된 일도 나중에는 높은 언성이 오고가곤 했다. 이는 내가 오빠를 피하고 멀리하는 상황을 잦아지게 만들었고, 한편으론 이러한 오빠의 태도와 쓴 소리 자체가 나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 상황이 안타깝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오빠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고, 어떻게 오빠에게 나의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유연한 것이 굳센 것을 부린다.’라는 구절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구절이 묘사된 그대로 내가 부드러운 태도를 통해 오빠를 부리거나 통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오빠와 내가 서로를 위하는 방법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내가 오빠를 위하는 마음도, 오빠가 나를 위하는 마음도 조금 더 잘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오빠에게 부드럽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오빠는 평소와 같이 나를 지적하고 큰소리를 냈지만, 나는 평소와 달리 그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들었다. 다 듣고 난 후에는 오빠가 고쳤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그 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나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했고, 그럼에도 그때 그 행동을 했던 것은 내가 잘못된 것이 맞으며 조언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오빠에게 부드러움으로 다가면서 일어난 첫 번째 변화는 신기하게도 나에게 먼저 있었다. 처음에는 말만이라도 저렇게 해보자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 행동은 점차 진정으로 내가 나의 잘못을 알고 인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전처럼 같이 화내지 않고 오빠의 입장을 들어보니 오빠만의 이유를 알 수 있었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오빠가 지적한 부분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오빠의 말을 조용히 듣기 시작하자, 오빠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전과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빠 또한 더 이상 큰 소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둘은 싸움이 아닌 대화를 하고 있었고, 갈라질 뻔 했던 남매 관계는 다시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이처럼 ‘부드러움이 과연 강한 것을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처음 나의 의문은 내가 몸소 경험하면서 내 나름의 상황을 해결해 나가면서 충분한 답을 찾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모진 말이 아닌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오빠와 나, 이를 보며 달라진 모습에 흡족해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는 과거에 부드러움이라는 해결책에 다가갈 수 있었던 나의 선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곤 한다.
시험 전 교수님이 주신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평소에는 해오지 못했던, 나의 삶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일주일동안 나는 도덕경 속 노자의 사상을 되새겨보고, 내가 살아온 삶을 비추어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도덕경을 통해 얻어가는 많은 것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바로, 비록 도덕경의 내용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향에 대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다가 마주칠 많은 상황들, 혹은 역경 속에서 이를 잘 다스려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앞으로의 삶에서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를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될 수 있었던 도덕경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주신, 그를 친구와 같은 존재로 다가오게 도와주신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리며, 그 친구와 함께 지금보다 넓은 세상을 마주할 미래의 나를 격려하고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