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있는 진정한 행복
: 외부와 교류를 하면 안 된다는 노자의 말에 대하여
2016311431 강유리
노자는 다른 지역과의 교류, 즉 외부와의 교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참 의문스러웠다. 현대 사회에서는 무역과 교류 없이는 발전이 없고 뒤쳐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자의 말은 지금 시대와 너무 큰 괴리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를 읽어나갈수록, 교수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아, 우리는 다 같이 바깥만 바라보느라 그 밖이 더 행복한 줄로만 알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없이는 반나절도 잘 지내지 못하고, 방학 때는 모두가 해외여행을 꿈꾸며, 내 바로 앞에 있는 예쁜 꽃들은 보지 못하는 삶. 과연 이게 진정한 행복일까? 밖으로만 눈을 돌리다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여러 번 해주셨다. 요즘 ‘참신기’에서 보이는 맛집 사진, 겉만 예쁘고 맛있어 보이게 치장한 음식 사진을 보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나 결국 그 음식들보다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음식들이라고. 이 말을 들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많이 반성했다. 바로 내 앞에 엄마가 만들어주는 진짜 건강하고 좋은 집밥을 두고, 나는 SNS에 올라오는 예쁜 음식들, 분위기 있어보이게 찍은 사진들을 보고 ‘싶음’을 가졌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고, 부러워하고 또 실제로 가려고 돈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반대로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내가 지내는 현실, 내 지금 모습에 대해 만족을 못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지금 먹는 음식이 충분히 맛있고 건강한데도, 내가 지금 지내는 이 일상이 충분히 아름답고 즐거운데도, 바깥만 자꾸 쳐다보니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덜 행복해보였다. 덜 예뻐 보였다.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예시 중에 또 기억에 남았던 게, 아마존 지역의 부족이 정말 그 안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공동체를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관광객이 들어오고 TV 등의 신문물들이 유입되면서 그 행복이 무너졌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날 해주신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가 무시된다는 이야기도 이에 이어져서 공감됐다. 우리 고유의 한복이나 고유의 음식이, 새로운 것들이 외부에서 들어오면서 덜 좋은 것, 덜 아름다운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참 안타깝고, 나도 참 많이 반성하게 됐다. 신문물이 들어오고, 외부의 소식을 참신기를 통해 항상 접하게 되면서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라고 물으면 ‘전혀 아니다.’ 혹은 ‘오히려 더 행복을 모르게 됐다’고 대답하고 싶다. ‘외부’의 음식, 문화, 문물 등은 모두 노자가 말하는 수많은 ‘이름’들이다. 그런 것들을 실제로 내가 경험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해지고, 결국 그건 ‘돈’에 대한 ‘싶음’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다 보니 우리가 만든 새로운 문물들에 우리가 지배당하는 것 같다. 65장에 ‘지략’에 대한 글이 있는데, 그 글에 대한 교수님의 해설에서 이런 부분이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돈은 원래는 물건을 편리하게 바꾸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이 통용되기 시작하면 돈이 사람을 지배한다.…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여 돈에 밝을 수밖에 없다.
‘돈’이든 ‘참신기’든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데, 오히려 인간이 이것들에 지배당하고, 없이는 못 살게 되어버렸다. 돈을 벌기 위해서 지금 나의 행복을 버리고, 그 돈은 또 참신기에서 본 어떤 ‘이름’을 위해 쓰인다. 같은 장의 해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 공감되어서 읽고 난 뒤 몇 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돈에 밝기 때문에 따뜻한 인간관계를 버리는 어리석음에 이른다. 예컨대 비싼 집값도 교육비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서 집을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젊은 사람들이 돈에만 집착하여 돈에만 밝을 수밖에 없다.…사회 자체의 존속이 위험스럽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특히 젊은 사람들이 돈에만 밝아서 돈 꿈을 꾸고 인생을 어리석게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있다. 돈만 보고 내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길가에 핀 노란 민들레를 감상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말하는 우리 사회의 젊은 사람으로서, 돈만 보고 내달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 참 공감되었다. 돈을 어떻게 벌면서 살아야하지, 집은 어떻게 구해야하지, 공부를 얼마나 더 하고 어떻게 취업을 해야 하지, 이런 걱정으로 가득 찬 날들. 스마트폰이 없던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나는 다른 많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고 지냈었다. 친구들과 수업 후 나와서 놀던 운동장, 그 운동장에 있는 정글짐에서 놀던 나, 시소나 그네를 타는 그 자체가 행복하고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면서 쌓던 추억들. 하교할 때 날씨가 좋거나 햇빛이 예뻐서 느끼던 행복들.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재밌는 얘기에 웃고 떠들고 친구들끼리 쪽지를 주고받던 날들. 그런 것들을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과연 느낄 수 있을까?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메신저나 게임, 여러 동영상이나 사진 등에 빠져있는 날들을 보내며, 내가 느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을 그들은 느낄 수 있을까? 지금의 나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대학 생활 내내 스마트폰, SNS에 빠져 살고, 친구들과 주고받던 쪽지나 편지들은 짧고 정성 없는 메신저들로 대체되어버렸다.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대학생은 알차지 못한, 아름답지 않은 청춘을 보내고 있다고 여겨지며, 겉으로 예쁜 것들만 추구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진정으로, 길가에 핀 예쁜 민들레를 감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니 노자가 외부와의 교류를 절대 지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외부에 있는 것들만 선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스마트폰 속의 세상이, 아름다운 듯 치장한 그 세상이 나의 행복의 종착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행복은 내 주변에, 내 바로 앞에 있는 것에서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길가다 보는 예쁜 들꽃도, 친구들과 웃으며 보내는 대학생활도,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지금과 같은 날들도, 해외여행이 아니라도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그 소중한 시간들까지도, 이게 바로 진정한 행복이었다. 스마트폰을 아예 쓰지 않겠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 ‘참신기’ 속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그 속에 가득한 ‘이름’들을 내 마음에 담지 않으련다. 그로 인해 생긴 ‘돈’에 대한 욕망이나 여러 ‘싶음’들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련다. 우리 사회 전체가 노자의 말대로 조금씩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에, 바로 앞에 있는 진정한 행복, 진정한 건강, 진정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너무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수님께서 해설하신 「도덕경」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고, 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참 감사하고, 이런 날들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노자의 말이 구시대적이라고 여겼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싶음’을 갖고 그걸을 좇아 행복하려고 애쓰는 삶보다, ‘싶음’을 버리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