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메이지 않는 사람 이원우 (경제학과 2학년 2016310100)
한 학기동안 노자를 공부하며,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자 다짐했으면서도, 공부가 아닌 학점만을 챙기던 저였습니다. 그동안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들었던 것은 학문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저의 바람은 좋은 언론인으로 성장하는 것이어서, 사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경제학을 배우고자 경제학과에 진학을 했으나, 밤을 새워가면서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눈이 감기는 것을 살집을 꼬집어 버티고 버티면서 공부하는 것, 이것이 과연 좋은 길이고 나를 위한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강의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학점을 받고자 하는 대단한 싶음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첫 수업부터 강의가 아닌 “시험에 나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가장 큰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바로 학기 초에 있었던, MBC선배님들의 강연이었습니다. 당시 파업을 진행 중이셨던, MBC직원들 중 7분의 학교 선배님들이 오셔서 질의 응답식의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 분들은 언론이 질문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정직함과 포용성이 필요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직하게 기사를 쓰고, 모든 사실을 포용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좋은 학점은 기자가 되는데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대답을 해주신 분은 MBC의 기자협회장이신 92학번 왕종명 선배님이셨습니다. 선배님은 정직함과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거기서 현안문제들에 대해서 선배들과 질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하겠구나.
그 뒤로, 저는 학점보다는 앎을 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수업에 충실하고 매일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 많은 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학점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수업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자는 앎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허나, 저는 학점에 집착하는 쭉정이 앎보다는 그래도 나의 속을 채워주는 앎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앎이 필요치도 않은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저는 이미 좋은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싶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자세는 배를 채워주지는 못해도 마음과 머리를 채워주는 자세 정도는 될 것입니다. 이전의 머리 가슴 배를 텅텅 비우고 몸만 혹사시키는 자세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눈에 가장 들어온 것은 사회과학고전읽기 강의였습니다. 주옥같은 말들이 적혀 있는 이 책과 강의는 저에게는 마치 따뜻한 물에 담근 것과 같이 지친 몸과 머리를 그리고 마음을 비워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無의 철학을 생활 속에서도 실천하려 했으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올해 어느 겨울, 날씨가 꽤 쌀쌀해질 때 즈음, 수능이 끝난 친구가 서울로 갑작스레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찾아와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사내아이가 눈물을 보는 것이 흔치 않은 상황이라 조금 당황하기도 하면서 저는 머쓱해하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친구는 이번으로 3번째 수능을 보는 친구로, 이번 수능을 잘 보면 저와 다른 친구 한명과 호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는 이번 수능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좋은 성적을 받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여행을 간다고 말씀드린 뒤 부모님께 돈을 받을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친구가 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기가 찼습니다. 부모님이 니가 대학 합격하는게 뭐가 좋다고 너한테 여행가라고 돈을 줘야 하냐고, 지금까지 삼수하면서 한달에 300만원씩 학원에 내고, 앞으로 등록금도 내야한다는 말인데, 라고요. 친구는 벙찐 표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사고를 할 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3년의 수험생활과 2년의 기숙 재수생활이 그를 사람도 아닌 기계로 만든 것 같았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라고 만들어진 기계 말입니다. 그리고는 일단 돈은 내가 빌려줄테니 여행은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방학 때 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어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2달을 바짝 일하면 등록금은 물론 학기 중에 쓸 생활비도 대충 벌 수 있습니다. 좋은 학점을 받아서 장학금으로 부담을 줄이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였습니다, 이 친구의 여행 경비까지 빌려주면, 아마 다음 학기는 등록금을 대지 못하여 휴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대출을 받아서 다닐 수도 있지만, 저는 다음 휴학이, 이 친구의 여행과 생각을 위해서라도, 저의 생각 정리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학기 천천히 쉬면서, 학교를 계속다닐지, 아니면 제가 원하는 배움을 찾아서 그것을 공부할지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학교를 그만둘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얽메이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서 한 번쯤 느긋함을 넣어줄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친구는 대학에 와서 무얼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서, 저는 돈은 언제 갚으면 되냐는 친구에게 그건 나중에 일해서 갚던가 하고, 이번에 대학 미련 털어버리고 인생의 정체성을 한 번 찾아보자고 말했습니다.
길은 함을 가지지 않지만 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道常無爲而無不爲) 저는 길은 아니므로 길을 닮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적어도 다른 함을 가지지는 않고자 합니다. 즉, 적어도 남의 함과 싶음과 욕에 휘둘리는 일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얽메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