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몸 중에
2011310575 봉수현
나는 4학년, 졸업년생이다. 벌써 3년째이다. 이제는 어떤 수업을 들어도 대부분이 제법 동떨어진 후배들이다. 휴학을 많이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 학생들에 비하면 적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년이 낮을 때 학점 관리를 엉망으로 했기 때문이다. 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자연스럽게 졸업이 늦어졌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4년 동안 정성껏 관리한 학점을 그나마 졸업이라도 하기 위해 아등바등 만회하려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마이너스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제로로 돌리는 것도 까다로웠다. 이미 제법 긴 시간 동안 나태해진 두뇌를 늦게서야 다시 굴린다고 한들, 예전처럼 쉽게 풀가동이 될 리 만무했다. 받아야할 학점은 저 높은 고지에 있는데 정작 내가 받는 학점들은 간신히, 아주 조금씩 만회가 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1년이라도 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만 거듭되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환경도 좋았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용돈만으로도 일상생활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갚아야할 학자금도 없었다. 그런데도 뒤처졌다. 왜 이 정도밖에 안될까. 나는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던 걸까. 뒤늦게 내달리면서, 자괴감은 커져만 갔다. ‘졸업만 해라.’ 어느덧 부모님의 바람은 소박해져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부모님이 원래부터 그러셨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다. 고등학교 때 사춘기를 겪었음에도 성균관 대학교를 입학하자 그러한 기대는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나 엄마는 본래부터 나에 대한 기대가 몹시 크셨다. 굳이 무언가를 이루기를 바란다기보다는 그저 하나뿐인 딸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아 무엇이든, 무엇이라도 분명 해낼 것이라는 믿음에 가까웠다. 나는 기뻤지만 또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딸을 기꺼이 믿어주시는 엄마가 감사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엄마 딸은 그런 사람이 못 되는데. 차마 말은 하지 못한 채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날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와중 유명 연예인의 비보를 접했다. 나와 불과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젊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만큼 한계에 몰려있었다. 머리로는 이번 학기에 졸업을 하지 못해도 다음 학기에 하면 되지,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이미 너무 뒤쳐졌다는 생각만 되풀이되었다. 더 이상 부모님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번에 끝을 내지 못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반드시 졸업하자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엄마의 다짐과 믿음이 무거웠다.
“이번 학기에도 졸업 못하면 어떡하지?” 농담처럼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엄마가 당연히,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되물을 줄 알았다. 그럴 리 없다고 확신에 찬 답변을 되돌려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다음 학기 다니면 되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한마디였다.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졸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굳은 믿음이 깃들어있었다. 정말 놀랍게도 그 순간, 나를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이름과 몸 중에 어떤 것이 참된가? 소중한가? 만족할 줄 알면 욕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그러면 길이길이 누릴 수가 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어쩌면 부모님은 도덕경의 그 구절대로,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이상 이름에 얽매이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름에 얽매여 부모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나였다. 사실 아직도 나는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 하면서도 정말 그것만으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덜어내어 길이길이 누릴 수 있는 길로 발길을 돌렸으니 우선은 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