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약 600일이 넘게 사귀었었던 전 남자친구가 있다. 전 남자친구의 의미에 맞게 지금은 그와 교제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한달에 4번정도, 서울에 사는 나와 충청도에 사는 그 사이의 거리와는 맞지 않는 횟수만큼 그를 만나고있다. 우리는 어릴적 친구였다. 몇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때 나는 그와 같은 반이었고, 대개 같은 성별끼리 어울리던 반 분위기와는 반대로 우리는 같이 놀곤했다. 그리고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짝꿍이 되었었지만 연락이 끊겼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연락이 닿으면서 우리는 결국 내가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시작할때 쯔음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도 재수를 하였기에 우리는 같은 도서관 옆자리에서 공부를 하였었고, 그렇게 1년동안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서로를 보았지만 나의 재수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떨어지게 되었다. 나는 성균관대학교에 오게되었고 그는 1년을 더 도서관에 남게 된 것이다. 그 1년동안에 우리는 많이 다투었다. 사실은 내가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망쳤다고 투정부리며 그의 전화를 끊곤했고 대학생활을 누리며 그를 소홀히했다.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정도 많이 부렸다. 그렇게 다투는 동안 우리는 서로 멀어졌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최근에 룸메이트와 대화를 하던 중 룸메이트가 내가 그와 왜 헤어졌는지를 묻길래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는 나름대로 그와 헤어진 이유가 충분히 많다고 생각했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그가 했으면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룸메이트는 내게 '네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게 아니니?'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다지 좋은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나는 자주 그에게 명령조로 어떤 행동을 자주 시키곤 했고, 그가 싫어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고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사소한 잘못이라도 했을 때엔 불같이 화를 내서 그가 너무 과도하게 화를 내는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시 공부하는 그 앞에서 즐거운 대학생활에 대해 신나서 얘기를 하고 그를 자주 챙기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많이 후회하지만 단순히 학벌로 그를 재단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단순한 외적 성취, 즉 성적표 하나로 내가 그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나는 엄밀히 말하면 나의 명과 욕에 따른 함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가 움직이기를 바라면서, 대학이라는 이름 하나로 나와 그를 비교하면서.
여전히 만나면 나를 챙기고 2년 전과 같이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그를 보면서 '명'과 '욕'이 사람을 얼마나 추악하게 만드는 지를 깨닫는다.내가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져 울고있을때도 그는 나보다 더 성적이 떨어졌음에도 나를 지켜봐주었고, 부모님과 내가 각자 바라는 대학이 달라서 어느 대학에 등록할지에 대해 다툴때도 그는 대학에 갈수 없었음에도 나를 위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순히 외재적 가치인 것들로만, 나의 욕망으로만 그의 가치를 판단했던 것이다. 함에 따라 바라본 그의 모습은 나에게 단점 투성이로 비춰졌고 그가 나에게 베풀었던 사랑과 위로는 점점 옅어졌다. 최근에 들어서야 헛된 '명'이 나 자신을 더 괴롭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전보다 더 그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