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몸 중에
이름과 몸 중에 어떤 것이 참된가?
몸과 돈 중에 어떤 것이 소중한가?
얻음과 잃음 중에 어떤 것이 문제인가?
그래서 아주 아끼면 톡톡히 잃고,
많이 쟁여두면 크게 망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그러면 길이길이 누릴 수가 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벽지 강원도에서 제일 공부를 잘 한다는 명문 중학교였다. 여학생만 다니던 그 학교는, 그래서인지 학생들 사이의 견제와 경쟁이 유난히 심했다. 신입생 학기 초, 실장 선거를 나갔다가 떨어진 뒤 은근한 따돌림을 당해왔던 나는,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독기에, 열심히 공부만 했다. 덕분에 1학기 때 반에서 3등이었던 성적을 반 1등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성적에 대한 집착이 심한 학교여서였는지 친구들은 공부를 잘하는 내 주위에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나의 마음 속에 성적에 대한 집착을 심어놓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해 처음으로 경험한 중학교 학기부터 이런 일이 있고 보니, 나를 지키기 위해 높은 등수를 받아야한다는 집착에 시달렸고,스트레스에 유난히 약하던 내 몸은 중학교 시절 내내 바람 잘 날 없었다. 성적이 오르면 오를 수록 부담과 집착은 심해져만 갔다. 자신이 없던 수학은 문제집 몇 권의 답지를 달달 외워가 기어코 백 점을 맞았고, 잘 모르겠는 사회 과목은 교과서를 전부 베껴 쓰기도 했다. 과한 스트레스로 소화 불량에 시달려 밥을 잘 먹지 못했고, 당시 166센치미터의 키에 40키로가 겨우 넘는 몸무게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결국 빈번히 쓰러지기도 했다.
시험만 보면 입맛을 잃고 편두통에 시달리는 딸을 보며 엄마는 항상 걱정이 앞서셨다. 나 역시도 스트레스만 받으면 아파오는 몸에 힘들었던 터에, 앞으로는 시험 준비보다도 '마음 가다듬기'에 더욱 신경쓰리라 다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목표는 '백점'이기보다는 '욕심부리지 않기'가 되었다. 시험도 보기 전에 과목 별로 예상 점수를 써 놓고 평균을 내 보던 습관을 버렸다. 한 문제라도 틀리면 눈물부터 보이던 습관도 고쳤다. 조금이라도 욕심이 마음에 들어올라치면 "진인사대천명"을 외쳤다. 시험 전날에는 한 문제라도 더 맞고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샤워를 마치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노래를 들으며 편안히 잠들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내가 깨달은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본인이 '한 만큼만'을 바라는 것도 힘들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노력하지 않고도 만점을 바란다. 남의 노력은 보지 못하고 자신의 노력만 본다. 어느 순간보다 '만점'보다는 '어제보다 나은 내일', '재미있는 삶'을 위해 달려가는 나의 삶은 행복하다. 예전에 그렇게나 날 괴롭히던 편두통도, 소화 불량도 사라진 지 오래다. 만점 받아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면 뭘 하나, 밥이 넘어가질 않아 픽픽 쓰러지는 데. 그런 삶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또 살아있는 삶이 아니다.
이름과 몸 중에 어떤 것이 참된가? 남들이 정해준 이름, 타인이 우러러보는 이름에 죽어나는 건 바로 우리의 몸이다. 또 우리의 정신이다. 결국 우리가 귀 귀울여야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나의 마음이다. 나의 몸이다. 많은 이들이 본인의 생각, 본인의 희망보다도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죽은 삶'을 살아간다.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이 든다면, 이 세상을 또 시험을 생각하기 보단 좋은 음악과 한 잔의 차와 함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이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몸이, 내 삶이, 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