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기 위해서 생활과 윤리를 공부한 적이 있다. 물론 주로 암기식의 공부였지만 공자와 노자, 장자의 사상들을 한번쯤 귀에 익히기에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살아가면서 이성적으로 득실을 따지기 전에 튀어나오는 ‘이건 아닌데’ 또는 ‘이게 당연한거지’라는 생각들을 정리해놓고 이 생각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되어주는 자료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치스러운 소비생활을 보고 이를 그들의 자유라고 생각하기에 앞서서, 무엇인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내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오늘날, 마음과 같이 모호한 것을 근거로 그들을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옳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무시하고 비교적 명확한 근거가 되는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언급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정당화한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처음부터 그러한 입장이었던 것처럼 자신조차도 속이게 된다. 하지만 도덕경은 그런 마음들의 근거가 되어준다. 예를 들면, 노자가 말하기를 ‘얻기 어려운 재물을 중시하지 않고, 탐낼 만한 물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백성을 심란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니, 사치스러운 행동은 사회에 ‘싶음’을 퍼트리는 것으로 옳지 못하다. 즉, 처음에 느꼈던 옳지 않다는 마음의 근거가 되어 주는 것이다.
도덕경은 필자에게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게, 그 내면에게 집중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타인에게 효과적으로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입장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느껴지는 입장을 이야기하는데 근거가 되어주는 것이 그것이며, 또한 타인의 시선인 총애와 모욕보다는 자신을 소중히 하라는 13장의 ‘총애와 모욕이’에서 명백하게 들어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자는 타인의 총애와 모욕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3년간 총 52개의 교내 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물론 상이라는 것이 투자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필자는 그보다 노력이 타인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었었다. 상을 받으러 아침 조회시간에 교실을 나서면 느껴지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에서 행복을 느꼈고 몇 일 밤을 새서 만든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을 때의 칭찬에 보람을 느꼈다. 그 외에도 선생님들이 하시는 칭찬 한 마디 한 마디를 굉장히 소중히 간직하고 더 많은 칭찬을 받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총애’의 무게가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 속에 아직까지도 생생히 남아있다. “아직 네가 17살밖에 안된 아이임을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그래. 아직 너는 17살이야.”그렇게 이야기하셨다. 13장은 ‘총애와 모욕이 두려움거리 같고’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총애를 얻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말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총애에 매몰되다보면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게 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이 쌓이고 쌓여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며 결국 자신의 몸에 독만을 남긴다. 필자는 이때의 선생님의 말로 인해서 총애에 매몰되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숙한 자신을 인정하려고 현재까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실수를 해도 자신이 아직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감사의 말을 한마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총애와 모욕에 취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타인의 칭찬과 비판에 휘둘리며 상처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타인을 자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총애와 모욕을 받았을 때, 그 상황에 매몰되어 자신을 함부로 하기 보다는 기뻐하는 자신에게 수고했다 이야기하고 상처받는 자신에게 한마디 위로를 건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나아가, 도덕경 13장에서의 노자의 말처럼 살아 있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총애와 모욕이니, 이를 겪을 때 삶의 귀함을 먼저 생각해 이들 또한 귀히 여기려 노력해보고자 한다. 그러면 언젠가 타인보다 자신이 더욱 더 중요해져서, 타인의 칭찬 100개보다 스스로에 대한 1번의 인정이 더 값지게 느껴지고 타인의 모욕 100개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