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가짐과 함 안 가짐
2016311894 교육학과 조민주
2장에서는 이름 가짐과 함 안 가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름 가짐에 대한 내용은 우리가 ‘예쁘다’, ‘밉다’와 같은 이름을 만들어 대상에게 적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이 생겨난 것이며 사실 이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함 안 가짐은 이름과 싶음에 따른 함을 가진다는 것이다. 함 안 가짐에 대한 예시로 지렁이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지렁이를 좋아해서 지렁이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나의 이름과 싶음에 따른 베풂이라는 것이다. 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지렁이에게는 좋은 것일 수도 있으며 나의 잣대를 들이대며 판단해서는 안 되고 지렁이를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따라서 노자는 이름과 싶음을 버리고 함 안 가짐, 즉 함을 갖지 않는 행위를 처리하는 사람을 성인으로 보았다.
2장의 내용은 내가 도덕경에 흥미를 붙이게 된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나에게 너무 와 닿았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는 이름 가짐, 함 안 가짐 등의 말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니 일상생활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 가짐, 함 안 가짐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20살이 되어 처음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나는 어머니께 비싼 명품 화장품을 사드린 적이 있다. 어머니는 항상 저렴한 화장품이나 샘플로 받은 것들을 사용하셨고 그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내게서 선물을 받아 기뻐하셨지만 선물 받은 그 화장품을 잘 사용하시지는 않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은 이름 가짐과 함 안 가짐에 대해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에 대해 먼저 이름 가짐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좋고 비싼 명품 화장품과 싸고 좋지 않은 화장품에 대한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좋은 화장품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비싼 화장품 즉, 백화점에서 파는 브랜드 네임이 있는 화장품이다. 나에게는 비싸고 이름 있는 브랜드의 제품이 좋은 화장품이었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비싸지 않아도 본인에게 잘 맞는 화장품이 좋은 화장품이었던 것이다. 노자의 이름 가짐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명품은 사람이 이름 붙인 것일 뿐이다. 사람이 브랜드라는 이름을 만들고 비싸게 값을 매겨 비싼 브랜드의 화장품과 아닌 화장품이라는 다름을 만들어낸 것의 결과이다. 사실 비싼 명품 화장품은 좋은 화장품이 아니며, 그렇다고 좋지 않은 화장품도 아니다.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은 동시에 생겨난 개념이자 상대적인 것이다. 좋음이 있어야 좋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마다 좋고 좋지 않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므로 이 수식어는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이름 가짐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함 안 가짐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게 된다. 사람이 이름 붙인 것에 집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싶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이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노자가 언급한 성인의 모습처럼 이러한 이름에 따른 싶음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명과 싶음을 가지지 않는 행위를 한 안 가짐이라고 부른다. 지렁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에게는 시궁창이 더 좋은 환경이듯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환경은 우리 입장에서 좋은 것이지 지렁이에게는 좋은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머니에게 좋은 화장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드렸지만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것이지 어머니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는 좋은 화장품이라는 이름에 대한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한 어머니가 저렴한 화장품을 쓰는 것을 보며 좋지 않은 내 마음을 위한 행위, 베풂이었다. 어머니가 비싼 화장품을 쓰시는 것을 보면서 행복 하고 싶은 나의 싶음에 따른 행위였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머니께 화장품을 사드린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행동은 나의 이름과 싶음에 따른 행동이었으므로 노자가 주장한 것들에 비추어 살펴볼 때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노자의 말에 따르면 나의 행동을 올바르다 아니다 라고 평가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또한 나는 어머니께서 선물해 드린 것을 잘 사용하지 않으셔서 속상해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의 이름과 싶음에 비추어 본 것 이었으므로 결코 속상해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그것을 잘 사용하기를 바란 것도 나의 싶음에 따른 것이었다.
노자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집착했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편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할 때 이를 하나하나 신경 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결정들을 해야 하는데 좋다와 좋지 않다는 생각 없이는 결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당장 무엇을 먹을지 메뉴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 음식에 대한 나의 생각이 없으면 나는 무엇을 먹을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자의 사상을 평소에도 적용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고 대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무조건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또 나의 잣대에 맞추어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 줄 때에도 그것이 나의 기쁨, 즉 싶음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남에게 무엇을 베풀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덕경이나 논어 같은 옛 사상들에게서는 배울 점들이 아주 많지만 그 때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다르므로 이를 지금의 현실에 맞게 잘 적용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