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바퀴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큰 동그라미와 사이사이 박힌 살들만을 그렸을 것이다. 바퀴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은 나의 기억 속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 못했다. 때문에 처음 ‘삼십복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수레바퀴 하나에 서른 개의 살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야 바퀴로 그것을 쓸 수 있다)는 구절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가짐’이 주는 유용함에 대해 처음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에서 ‘채움’에 대한 갈증이 가장 컸던 부분은 사랑과 외모였다. 사랑을 할 때에는 상대가 빈틈없이 나를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화장을 할 때에는 밋밋한 눈코입을 가리기 위해 짙은 화장을 덧칠하고는 했다. 노자가 제안한 비움의 미학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사랑과 외모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 굉장히 달라졌다.
최근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자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그동안 연애를 하게 되면 내가 상대방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연락이 몇 시간 안 되거나 별다른 일 없이 며칠간 데이트를 못하게 되면 애인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 투정을 부리곤 했다. 사랑을 더 채우려고 할수록 애인과 갈등은 커졌고, 이별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노자의 말에 비추어 생각해 보건데, 예전의 나는 상대방과 내 사이의 공간은 사랑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퍼즐 맞추듯 꼭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간극을 미워하기만 한 것이다. 노자를 배우고 나니 수레바퀴 가운데의 구멍이 있어야 바퀴가 굴러갈 수 있듯이 연인 간에도 공간이 있어야 더 잘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연인과 연락이 안 되는 동안에는 내 삶에 집중해서 나중에 상대방을 만나 더 멋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데이트를 하지 못할 땐 서로 그리움을 참고 있다가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더 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마음가짐을 달리 하니 상대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상대도 배려심 깊은 나를 더 위해주었다. 요즈음 데이트 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별할 때나 싸울 때에 욕설을 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나는 이 문제가 더욱 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잘못 표출되었기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게 사랑하되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차이와 공간을 오롯이 인정할 때 더 큰 사랑이 생길 수 있다.
누구나 더 예뻐지고 멋있어지고자 하는 마음은 있다. 그러나 tv에서는 온종일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들의 화장 비법을 틀어대고, 살집이 있는 사람을 자기관리가 소홀하다고 표현하면서 여론이 정해놓은 방식으로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은 ‘부족하다’라고 정의한다. 강남역에 가면 빽빽한 건물들이 성형외과로 가득 차있다. 나 또한 tv나 인터넷을 보면서 외모에 집착을 하게 되고 얼굴에 더 많은 화장을 채워야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넓은 화장대는 매일같이 사대는 화장품 때문에 빈틈이 없었고, 아침 수업을 가야할 때에도 40분씩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고치곤 했다. 그러나 노자의 ‘삼십복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을 배운 후 한 군데씩 화장을 하지 않고 길을 나서 보았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어 부끄러웠지만, 밋밋하고 비어보일 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모습을 보게 되었다. 립스틱을 칠하지 않은 맨 입술은 온도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여 분위기가 달라보이게 했다. 두꺼운 화장에 가려있던 피부도 숨을 쉬게 되면서 맑고 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화장대를 비워갈수록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고, 온전한 나를 드러냈다는 마음에 자신감도 생겼다. 더 많은 화장이나 성형을 채워서 예쁨을 얻고 싶어 하는 요즈음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다이어리에 ‘심십복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을 되풀이 하여 적어본다. 그렇게 하고나면 부족했다고 생각되었던 하루가 그 나름의 멋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더 멋진 행운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기대도 하게 된다. ‘빈 것’이 주는 행복을 알아차리게 된 후 내일이 오는 것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