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오는 동안 그 인연들 사이에서 함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도 있고, 때로는 사람들의 모진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화가 났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나뿐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감에 있어 이런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갈 터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을 맺고 살아가는 동안 느껴온 다양한 감정들의 밑바탕에는 항상 두렴거리(驚)가 깔려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무슨 이유로 내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걱정을 하는지 몰랐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총욕약경 귀대환약신)
'총애와 모욕이 두렴거리 같고, 큰 걱정 귀히 함이 내 몸 귀히 함과 같다.'
책에 등장하는 위 구절과 그 풀이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오는 동안 느껴왔던 두려움과 그로 인해 내가 걱정을 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노자는 타인의 총애는 얼마 안 가 냉대로 바뀌는데, 총애가 냉대로 바뀌었을 떄,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이 크다고 말한다. 책에는 이를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던 사람들은 남이 무심코 던진 말에도 쉽게 분노하고 상처받는다고 나온다. 이 말은 나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나는 1남 3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결혼하고 약 10년만에 나를 낳으셨다. 지금은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내가 태어난 90년대 초반에는 아들을 딸보다 귀하게 여기는 풍토가 꽤나 강했던 듯 하다. 10년 만에 본 아들이니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와 친척 어른들을 나를 매우 이뻐하셨다. 나는 이런 어른들의 총애를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귀한 아들이지만, 내 누나들이나 친척의 다른 형제들에게는 그냥 똑같은 친척이고 형제일뿐이었다. 내게는 적게는 15살에서 많게는 20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친척 형들이 있는데, 그 형들은 어릴 떄부터 누나들과 나를 똑같이 그저 친척동생으로만 대했다. 형들은 누나들과 내개 때론 장난을 치기도 하고, 화를 내고 혼내기도 하였다. 어른들부터 좋은 대접만 받던 나에게 친척 형들의 작은 놀림마저도 큰 걱정이었다. 내가 형들의 장난에 쉽게 상처받았던 것과 달리, 누나들은 똑같은 말을 들어도 오히려 재치있게 형들의 장난에 맞대응하면서 웃으면서 넘어갔다. 어른들의 총애가 나를 타인의 말에 더 쉽게 상처받게 만든 것이다.
나는 타인의 작은 말과 행동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학굘르 다니며 친구를 사귀는 동안에 나는 친구들로부터 총애를 잃지 않는 것에 몰두했다.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할까 걱정되어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내가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면 그 부탁을 거절당할까 걱정되어 친구들에게 작은 것조차 부탁하지 못했다.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운동을 매우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축구, 농구 등의 운동을 할 떄, 나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함꼐 축구와 농구를 하는데, 나의 실수와 못함 때문에 우리 편이 졌을 때의 그 책임과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단순히 노래 부르며 놀기 위해 노래방에 가자고 했을 때에도, 나는 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르기 때문에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친구들의 비웃음을 살까 걱정되어 노래방에도 잘 가지 않았고, 노래방에 가더라도 단 한 곡도 불러본 기억이 없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뛰어 놀고 노래 부르며 노는 것이 그 시절의 가장 큰 행복이고 추억일텐데 나는 친구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어떠한지와 평가에 매몰되어 그 추억과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태어나 자란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초,중,고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 연락이 많이 뜸해졌다.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다보니, 함꼐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고등학교 친구들 외에는 만나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거의 없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만 있으면 친구들과 얼마든지 연락을 할 수 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길어봐야 5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좀처럼 친구들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연락해서 얼굴 한 번 보자고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아마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학창시절보다 안 좋게 바뀔까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들은, 그것이 나를 향한 총애의 표현이이건, 모욕의 표현이건 상관없이, 노자 입장에서는 귀한 것이다. 내가 친구들이 내게 하는 칭찬이나 놀림과 비판 모두 똑같이 귀히 여길 수 있었더라면, 그 당시 더 순수하게 친구들을 사귀고 함꼐 어울려 놀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좋은 평가 받는 것에만 몰두하고, 나쁜 말 듣는 것을 피하기만 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아쉽고, 어린 시절 친구에게 간단한 안부의 문자 한 통조차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다. 친구들과 함꼐 웃고 떠들던 그 때가 그립고, 웃고 떠들 친구가 없는 지금이 너무도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