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명의 기록과 인간의 역사.
<도서관의 탄생>은 도서관 발달의 역사와 의의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오늘날의 책과 도서관은 너무도 당연한 존재로 여겨져서 본인을 비롯한 현대의 사람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서관의 역사를 고대부터 되짚어보니 공공 도서관과 인쇄술의 발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최초의 도서관', '최초의 책'과 같은 말들은 그 아득함에 두근거림이 느껴질 정도이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300년 경의 Ebla 도서관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올라가지만, 이 책에서는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의 니네베 도서관을 최초의 도서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대에는 점토판에 글자를 새기거나 필경사가 직접 필사하여 책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책은 귀중한 재산이었고, 전쟁이 일어나면 정복의 의미로 약탈 혹은 파괴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근대의 전쟁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책의 수집과 서재(서재가 커지고 공공화되어 도서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통하는 의미가 된다)의 소유는 주로 고위 신분의 몫이었고, 아슈르바니팔이나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열정적인 수집가 왕들이 도서관이라는 존재의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이 도서관들은 이후 전쟁이 일어나 약탈되고 파괴되어 사라지는 가슴아픈 역사를 겪기도 했다.
초기 도서관의 발전에 공헌한 것은 책 수집에 열정을 보인 권력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종교와 필경사의 존재이다.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경전이 필요하고, 그래서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수도원 등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필경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그들의 인간적이고도 재미있는 면을 엿볼 수 있는데, 중세의 필경사들은 필사를 끝내고 책의 여백에 "끝났다! 아, 고맙습니다.", "펜의 대가로 예쁜 아가씨를 주소서."와 같은 짧은 낙서나 후기를 남기곤 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몸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하루종일 글씨를 쓰는 그들의 노고 또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점, 대학 도서관, 아세니움, 도서관 운동 등을 통해 서지학과 체계적인 도서 분류법이 발달할 즈음 공공 도서관이 하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빛나는 노력을 한 사람들 중 가장 잘 알려지고 또 인상깊은 인물은 바로 철강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앤드루 카네기이다. 카네기는 "코로넬은 그 작은 도서관을 통해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열어 주었다."라고 말하며 어릴 적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심어준 작은 마을 도서관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은 소년 소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기업가 및 자선 사업가로 활약하며 도서관 부문에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서관과 지식의 힘을 깨달아, 부유층이 되어서도 공공 도서관과 같은 사회의 기관 설립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다.
이 다음에는 '사서의 역할'이라는 소제목으로 사서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도서관의 역사에 관한 내용 만큼이나 주의 깊게 본 부분이다. 시대에 따라 도서관의 양식이나 사고방식은 달랐지만, 1890년대 후반의 도서관 책임관리자 존 코튼이 역설한 내용에 따르면 사서는 책과 지식을 중시하고 이용자와 지역사회에 그 자신의 실무 능력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큰 개념은 시대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사서는 그저 책을 정리하고 도서관 카운터나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이용자들과 마주하며 어떤 직업에 뒤지지 않는 지식 전달에 대한 사명감으로 직업에 임하는 전문가이다.
마지막으로는 세계의 여러 도서관에 대해 설명하는데, 아름답고 웅장한 도서관들 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으니 바로 뉴욕 공공 도서관이었다. 뉴욕 공공 도서관은 재정난에 시달리던 애스터, 레녹스 두 도서관을 통합한 것이 전신으로, 재단이 앤드루 카네기의 지원금까지 얻어 뉴욕 시와 도서관 운영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대표로 구성된 도서관평의회가 '뉴욕 시'와 직접 계약을 맺고 공사가 협력하여 만들어진(지금도 협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공공 도서관 운영 체계는, 대규모 공공 도서관은 대부분 정부 법령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드문 일이라고 한다. 정부가 도서관에만 신경을 쓸 수도 없고, 많은 예산을 쓸 수 없는 상황일 때 지역 사회의 요구를 일일히 반영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인데, 그런 때 지역사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의회가 힘을 가지고 도서관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많은 문제가 좀 더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는 미국 최초로 대중에게 개방된 대형 도서관인 보스턴 공공 도서관 출입구 위쪽에 새겨진 'FREE TO ALL'이라는 문구가 뇌리에 남았고, 연회비를 내면 이용 가능한 런던 도서관의, 낡았다고 해서 책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쾌적한 정보 제공소로써의 도서관도 중요하지만, 문서 보관소(아카이브)로써의 도서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설립 이후 습득한 거의 모든 책을 폐기하지 않고 보유하는 런던 도서관의 방침이 인상깊었다. 게다가 장서의 97%가 대출 가능하여 오래된 희귀 도서까지 대출해주는 정책은 연회비가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도서관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 뿐 아니라, 인류의 집단적인 기억으로서 시간이 지나며 쌓아올려져온 우리 인류의 또다른 유산, 도서관. 동시에 미래를 위한 지식을 갖춘 곳이기도 한 도서관으로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깨닫게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