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돈키호테'라고 하면 그에 달라붙는 수식어로 '무모'하다거나, '이룰 수 없는' 같은 말이 달라붙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배우 홍광호가 부른 버전으로 유명한 뮤지컬 맨오브 라만차의 메인 넘버 제목도 역시 Impossible Dream(이룰 수 없는 꿈)이다.
이처럼 세르반테스의 책에서 묘사된 돈키호테의 이러한 독특한 캐릭터성은 오랜 세월을 거쳐 여기서 비롯된 수많은 변용어, 패러디물 등을 만들어내며 심지어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로, '풍차', '산초', '로시난테' 등 돈키호테 속의 핵심 단어들과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었다. 고등학교 때 스페인 문화와 스페인어를 접할 일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돈키호테와 같은 스페인 문화권의 책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었는데, 이유는 스페인 문학 특유의 난해함 때문이었다. 이 장르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이기도 해서 번역본의 다른 문화권의 그것과는 달리 매끄럽지 않았던 점도 한 몫 했겠지만 현실 세계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기괴한 마술적 분위기가 섞여 있는 이도 저도 아닌 배경과 작가들의 이질적인 서술 방식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역시 나에겐 너무도 난해하고 어려운 책일 뿐이었다. 다들 불후의 명작이라고 칭송하는 책들에서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니, 내가 아직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건가 싶기도 했다.
'돈키호테'는 그랬던 고등학교 시절 내가 갖은 핑계를 대며 끝끝내 피했던 책이었다. 아마 은연중에 이것을 읽어도 지금의 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전부 읽은 지금의 나에게 그 감상을 한 마디로 묻는다면?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순하다' 라는 답을 할 것 같다.
과거의 나에게 '돈키호테형' 인간은 그저 무모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과거와 생각이나 성격적인 면이 많이 달라진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돈키호테(사실은 알론소 키하노)의 무모함에 너무나 답답하여 혼자 전전긍긍하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라. 장장 1000쪽이 넘는 페이지수의 이야기 안에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치고 받고 달려들고, 그러다 다치고 가진 것을 잃는 패턴의 이야기가 수십 번이 반복되는데 말이다. 헌신적인 시종인 산초에게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들을 흔쾌히 맹세하는 그가 얄밉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에게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책 속에서 돈키호테가 마주쳤던 상황들은 그가 미치지 않은 정상적인 사람이었더라도 결코 돌파할 수 없는 난관들이 참 많았다. 반대편에서 강도 떼가 달려오는 데 목숨을 온전히 부지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또한 오히려 그가 미치지 않았으면 이룰 수 없었던 일들도 많다. 어떻게 그의 시종을 (잠시나마) 통치자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며, 그의 영웅적 모험담을 소재로 한 책(책속의 책)이 출판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책 속의 가장 큰 의미는 그 시대 만연했던 신분적 차별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해주는 돈키호테의 '공평한' 기사도 정신을 통해 잠시나마 타파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뮤즈'로 삼는 둘시네아는 사실은 미천한 하녀의 신분인 알돈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그녀를 칭송하여 따른다. 이 뿐만 아니라 책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돈키호테는 자신이 손해를 볼 망정 끊임없이 도움을 주고 높여부르며 존중해준다.
아마 400년도 훨씬 넘은 과거에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점에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다행히 현대의 많은 독자들의 그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원작과는 달리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의 '둘시네아', 즉 하녀 알돈자가 실제 배역으로 등장하여 마지막엔 그의 인간적인 존중에 끝내 감동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더욱 집중하여 묘사해 놓은 것은 이러한 돈키호테의 인간적 면모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제작자의 현명한 판단에 따른 각색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이 미쳤다면, 미쳤다는 이름 하에 결코 이룰 수 없어보이는 것에 도전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순하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않은 것보다 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