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어느 글에서 읽은 이 문구가 나에게 큰 울림과 공감을 느끼게 해 출처를 찾아보았다. 출처는 책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한 말이다. 주인공의 생각과 삶이 어떠했는지 느끼고 싶어 책을 읽기로 했다.
먼저 간략하게 줄거리부터 소개하겠다. 스페인 라만차 지방에 살고 있는 50살 가까운 시골 귀족 ‘아론소 기하노’는 편력 기사 소설을 미친 듯이 읽는다. 결국, 이에 심취해 자신이 편력 기사이고,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기사도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을 사람은 바로 아론소 본인이라고 생각해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떠나기 전, 그는 스스로를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이름 붙인다. 낡은 갑옷과 볼품없는 말을 훌륭한 갑옷과 명마라고 착각하고, 순진한 시골 농부 ‘산초’를 꼬드겨 모험을 다니는 동안 하인으로 데리고 다닌다. 총 3번의 모험을 떠나는데, 처음에는 혼자 떠나 하루 걸리는 곳까지 가서 하룻밤을 자고 봉변을 당한 채 돌아온다. 두 번째 모험에서는 ‘산초’와 함께 더 큰 여정을 떠난다.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무작정 돌진해 격투를 벌이기도 하고, 양 떼를 적군으로 착각하고 공격하는 등 기상천외한 짓을 많이 한다. 그를 걱정하는 마을 신부 페로, 이발사 니콜라스는 그가 미친 이유가 편력기사 소설임을 눈치채고 책을 불살라버린다. 또한, 편력기사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마법사 행세를 하며 돈키호테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돈키호테의 광기는 멈추지 않아 그는 세 번째 모험을 떠나는데, 모험 도중 바르셀로나에서 ‘하얀 달의 기사’가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 둘은 결투에서 지면 당분간 낙향해 기사 활동을 중단하기로 약속한다. 안타깝게도 돈키호테는 그 기사에게 패하고, 약속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간다. 사실 ‘하얀 달의 기사’는 돈키호테의 학자 삼촌 ‘카라스코’였다. 그는 돈키호테가 편력기사 활동을 그만두게 하려고 페로, 니콜라스 등과 모의한 것이다. 하지만 고향으로 되돌아온 돈키호테는 모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건강마저 크게 악화되고 만다. 자기 삶의 전부였던 편력기사 활동을 못 하게 되자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페로, 니콜라스, 카라스코 등은 그에게 편력기사 활동을 재개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이미 편력기사 따위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다. 결국, 그는 꿈을 잃어버린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보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다. 그에게서 본받을 점은,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랜 기간 스스로 공부를 해, 자신이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기사도 정신을 퍼뜨리면 평화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비웃고 반대해도 자신의 신념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각 분야의 대가 중 주변인의 말을 다 듣고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엄청난 반대와 거절, 조롱이 있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확신한 대로 추진했다. 그 예로, 월트 디즈니가 있다. 그가 ‘미키 마우스’를 처음 세상에 선보일 때, 사람들은 ‘징그러운 쥐가 인기가 있겠어?’, ‘쥐가 주인공이라니! 말도 안 돼. 분명 망할 거야’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는 자신의 확신대로 밀어붙였고, 미키마우스는 전 세계 아이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자 디즈니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런 사례를 보았을 때, 돈키호테의 자기 확신도 본받을 만하다. 그 또한 엄청난 조롱과 방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계획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사전에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검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자신의 아이디어에 확신을 하기 전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스승을 만나고, 그 분야 ‘전문가’를 만나서 반대 의견과 조언에 대해 심사숙고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는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다른 이데올로기나 방법을 찾아서, 더 효과적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