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중요한 글귀가 너무 많아서 뭐로 첫 문장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이다.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은 (1984와 멋진 신세계 등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답게) 유토피아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당시 러시아 혁명의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반영한 책이다. 귀족 계급과 서구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완벽한 이상세계를 꿈꿨던 사람들은 스탈린의 공산주의에 다시 한 번 착취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메이저가 말했던 이상적인 공화국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돼지들에 의해 지배받는다.
“네 다리는 좋지만, 두 다리는 더 좋다.” 이 문장은 동물주의의 7계명을 없앤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이 결과적으로 만든 구호이다. 이 구호는 propaganda적 성격을 가진 양들에 의해 수십 번씩 외쳐지면서 경쟁자인 돼지 스노우볼을 몰아내거나 동물들의 말을 막는 데에 사용된다. 이것은 돼지들이 결국 두 발로 서서 인간의 모습을 따라내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는 것은 네 다리와 두 다리의 위계질서를 은근히 조장하는 것이다. 이 생각을 직접적으로 나타낸 사건은 돼지들과 인간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한 인간 농장주가 “동물농장 주인 여러분, 여러분이 싸워야 할 하등동물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하층계급이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 통치 하에선 동물들이(그리고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원하던 사회의 모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동물농장>에서는 동물들이 이 말을 듣고도 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언젠가는 완벽한 공화국이 실현되겠지’라는 생각을 굳게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 농장 벽에 동물주의의 7개명이 적혀 있었는데, 어느 순간 7계명이 돼지들의 이익을 위해 조금씩 고쳐진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면 안 된다’는 원래 계명은 돼지들이 침대에서 담요를 덮고 자기 시작했을 때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자면 안 된다’로 고쳐졌다. 또,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돼지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어떤 동물도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한 권력이 ‘음모’를 꾸미거나 ‘스노우볼 편’인 동물들을- 이들이 진실로 반역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죽였을 때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계명은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정당한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로 수정되었다. 동물들은 계명이 바뀐 것을 알고 있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바뀐 것을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1984>에서 당이 전쟁 상대를 바꾸는 것과 끊임없이 과거를 수정하는 것, 사람들이 그것을 즉시, 새로 믿게 되는 것, 그리고 원래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이 떠올랐다. 동물농장에서 돼지가 아닌 대부분의 동물들은 머리가 나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그들은 메이저 돼지가 말한 이상향을 모호하게 꿈꾸고만 있을 뿐, 그 이상을 실현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글자를 못 읽어서 머리도 좋고, 글도 읽을 수 있고, 언변도 좋으며, 폭력적인 수단을 갖고 있고, 욕심이 있는 돼지들이 정신적으로 통제하기에 딱 좋다.
언뜻 보면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돼지들과 나머지 동물들의 관계는 정치형태에 상관없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다. 뚜렷한 목적 없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적폐 청산을 부르짖으며 혁명과 변화를 외친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손으로 새로 뽑은 지도자. 새로운 지도자 아래에 처음은 나아진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통치자가 달라졌을 뿐 반복되는 착취와 억압. ‘모든 것이 예전보다 나아졌습니다.’, ‘모두들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겠지요?’라는 말 아래에 정당화되는 현재의 불공평함. 작품 해설 속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액튼 경의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